북호텔, 외젠 다비
런던에 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이 난다. 정확히 어느 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숙소에서 머지 않은 동네를 걷고 있었다. 어떤 거리에 들어서자 높게 잡아봐야 3-4층에 지나지 않는 건물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많은 수가 호텔이라는 간판을 걸어두고 있었다. 20대에 동유럽 여행을 다녔을 때 묵었던 호스텔들보다도 규모도 작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건물들이었다. 그 때 생각했다.
‘저런 호텔은 어떻게 예약해서 오는 걸까?’
신기한 것은 어쨌든 투숙객처럼 보이는 일행들이 종종 그 건물을 드나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약을 어떻게 하는지는 커녕 예약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는지도 궁금한 곳들이었다. 이 호기심을 더 해소하지 못한 채 거리를 지나쳤다.
외젠 다비의 소설에 나오는 북호텔을 읽으며 저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호텔은 2020년대에 흔히 떠올리는 호텔이라기보다는 여관, 혹은 하숙집 정도에 가까운 공간이다. 외젠 다비는 일반적으로 포퓰리스트 작가로 평가된다고 하던데 기회가 닿는다면 비슷한 계열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파가 주장하는 문학 이론을 요악하자면, 평민, 서민의 풍습을 묘사하자는 것으로서, 당시 세계를 휩쓸던 문한 양식(말하자면 심리 분석, 복잡한 의식의 고백)에 대항하여 자연주의 전통을 이어받자는 것이었다. 물론 자연주의의 도식적인 이론과 구시대적인 양식은 지양하는 계승이었다.
이런 묘사.
그녀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시원할 거예요.” 하고 루이즈는 대답하고 일어서서 이불을 고쳐 덮어 주었다.
호텔에 돌아오자 루이즈는 남편에게 터놓고 말했다. “마른 꼴을 본다면, 에밀! 다른 사람 같아요…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예요.”
4개월 후에 뤼시는 퇴원해서 에클뤼즈생마르탱 거리의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장소를 바꾸면 낫게 될거야.” 하고 그녀는 말했던 것이다. 루이즈는 매일 와 보았다. 그녀는 방 안과 약으로 가득 찬 침대 머리맡 테이블을 정돈해 주곤 했다.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뤼시는 방을 가꾸어 주는 루이즈를 바라보았다. 우정이 담긴 미소가 그녀의 열기 띤 얼굴에 비치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달라고 했다.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햇빛이 작은 뜰에 깃들어 있었다. 뤼시는 그것을 보고자 베갯머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7시 경에 미마르가 돌아왔다. 루이즈는 자리를 비켜 주었다. "잘 자요, 조심하고요!? 하고 문가에서 루이즈는 외쳤다.
뤼시는 금요일 아침에 죽었다. 수의를 입혀 준 것은 루이즈였다. 북호텔의 숙박인들은 화환을 보냈다. 장례식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호텔 사람들 대부분이 팡의 묘지까지 영구차를 따라 갔다.
일주일 후 미마르는 가구들을 ‘헐값으로 팔아 버리고’ 다시 북호텔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