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드로 빠라모, 후안 룰포
문명의 유한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면에서 지나간 역사의 흔적을 보는 것을 즐긴다. 바르셀로나를 떠나오던 마지막 날, 저녁 비행기를 타기까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을 찾았다. 과거의 일상이 상징과 기호가 되고 해석의 대상이 되는 현장을 조용히 거닐었다.
여행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 할 일이 없을까봐 출발하던 날 아침에 아무 눈에 띄는 책을 한 권 들고 왔다. 언제 왜 샀는지도 모르겠는 책의 제목은 <뻬드로 빠라모>였다. 왠지 제목이 스페인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방에 쑤셔넣고 왔는데 멕시코 현대 문학의 거장이라 평가 받는 후안 룰포라는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대충 스페인 어인 것은 맞았다.) 길지 않은 책이라 여행 중에 후루룩 다 읽었다. 중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공기를 찾아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나에게 달라붙은 열기는 떨쳐낼 수가 없었다.
공기가 없었다. 밤은 8월의 땡볕에 달구어진, 바람 한 점 없이 정체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국립 미술관을 나와 그 유명한 몬주익 분수를 지나쳐 에스빠냐 광장으로 향하는 길엔 그늘이 없었다. 오후의 바르셀로나 햇살을 직사로 쬐며 걷다보니 자연스레 저 구절이 떠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근처 어딘가에 맡겨둔 캐리어를 찾아 공항버스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