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스타
출국을 대략 1주일 남긴 어느 아침, 간밤에 온 푸시 알림들을 확인해보는데 호스트가 예약을 취소했고 환불이 진행 중이라는 에어비앤비의 메시지가 보였다. 호스트가 뭔가 실수를 했을까 싶어서 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봤는데 자동 번역이 중간에 껴 있어서 잘은 이해를 못했지만 규제 문제이며 자신이 취소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에어비앤비에 문의를 넣어서 알아보니, 바르셀로나 시 당국의 규제로 31일 미만의 단기 숙박의 경우 자격증을 가진 업체만 공간 렌트가 가능하게 되면서 많은 에어비앤비 예약이 강제 취소되었다고 하더라. 조금 당황했지만 빠르게 적당한 호텔을 예약했다. 직접 와보니 가격 대비로는 훌륭한 곳이라 다행이었다.
바르셀로나는 항구 도시다.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도 있다. 하지만 그 바르셀로나 해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일단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 많은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공식적인(?) 첫 일정으로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갔는데 가서 태닝 오일 바르고 누워 있어본 결과 왜 사람들이 이곳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조금 이해는 되었다. 직접 해본 경험으로 비교를 할 만한 해변 휴양지라고는 하와이밖에 없는 것이 바르셀로네타 해변 입장에서 억울할 수는 있겠지만, 물도 깨끗하지 않고 파라솔을 비롯한 각종 물품을 팔려는 호객꾼들이 계속 말도 걸어서 적당히 시간 보내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다만 8월의 바르셀로나 햇살만큼은 죽인다.
시에스타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왠지 모르게 쿨한 그 발음도 좋았지만 한낮의 더위를 피한 휴식이라는 그 이국적 의미가 참 마음에 들었다. 8월 말 한낮에 바르셀로나 구 시가지를 돌아다니면서 시에스타의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었다. 이건 낭만보다는 생존에의 의지가 발현된 문화였다. 여행 왔다고 너무 힘 빼지 말고 저 시간에는 그냥 숙소 가서 누워 있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처음 낮 시간을 보낸 둘째 날 오후에 빠르게 내렸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어디선가 온 소설책을 쭉 읽어보다가 정신을 때리는 문구를 보았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방어기제가 성숙해야 돼요. 유머라던가, 승화가 대표적인 경우죠. 이별이나 죽음을 음악이나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거예요. 방어기제가 그런 쪽으로 바뀌면 회복 탄력성이 확실히 더 좋아져요.”
어쩌면 제법 성숙하게 작동한 방어기제로 오게 된 바르셀로나 여행은 아직까지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