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돈의 멀티버스: 어버이날에 부쳐
즐겁게 본 영화였다. 몇몇 혹평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는 되었지만, 과연 마블의 단독 히어로 영화에서 그런 아쉬운 점들을 두루두루 만족한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의외로 몇 개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짜임새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소재의 다양성 면에서 단독 히어로 영화가 어벤저스 시리즈를 따라 가기엔 역부족이다. 원작은 잘 모르지만 그간 MCU에서 보여준 닥터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그렇게 풍부한 것 같지도 않고, 이 정도 이야기에 이 정도 시각 효과라면 충분히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영화라고 본다.
그건 그거고,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상기했던, 전부터 종종 느껴오던 어떤 어색함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려고 한다. (최대한 맥락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영화의 내용이 아주 조금 이어진다. 아주 조금.) 어느 등장인물의 배경 서사가 진행되던 도중 영어 대사의 "parents"를 자막에서 "어머님들"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나의 가정(家庭)처럼 보이는 단위에서 출산 및 양육을 맡고 있는 (단, 영화만으로 그들이 출산까지 담당?하는 설정인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흔한 지구인의 눈으로 봤을 때 여성으로 보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parents를 어머님들이라고 번역한 결정은 옳았다고 본다. 내가 어색하게 느꼈던 것은, "부모"라는 단어가 가지는 일상적임에 비해 같은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의 남성 또는 두 사람의 여성 또는 미래에 존재하게 될 그 어떤 인력 구성을 가리키는 단어가 우리말에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었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부모(父母)라는 단어의 일상적임은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다가 말고 과연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떠올려봤다.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부부(父父) 또는 모모(母母)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확장성과 실용성이 너무 떨어진다. 지금 우리가 부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모든 곳에서 부부, 모모를 병기해야 하는 것부터, 나중에 모모부, 모부부, 모모모, 부부부 같은 새로운 구성이 등장할 경우의 혼란은 말 그대로 대혼돈의 멀티버스다. "부모"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부"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아버지와 "모"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어머니라는 단어의 정의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맥락을 지워버리는 것도 가능한 옵션인 것 같지만, 그렇게 될 경우 남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단어의 정의엔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도 의문이다. 차라리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새로운 단어는 무엇이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바로 다음 날이 어버이날인 것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버이. 어버이야말로 괜찮은 대안이 아닐까. 발음이 애매모호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느낌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부모가 맞니 모부가 낫니 하는 소모적인 순서 논쟁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고 남성 1명과 여성 1명으로 이루어진 구성을 강제하지도 않는 듯한 어감이다.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리며, 어버이날의 헛소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