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결 블로그 ✍️ 💻 📷 🍻

풀옵션

내년 초에는 긴 자취 생활 – 문득 자취 생활이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밥을 지어 먹는 생활이라고 한다. 하여튼 밥 먹고 다니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 대한민국 – 중 처음으로 "풀옵션"이 없는 거주지로 이사할 계획이다. 이미 타임라인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이 난관에 봉착했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간 전력이 있겠지만, 뭐 하나 작은 거라도 한 번쯤은 생각을 정리하고 넘어가기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내게 이 풀옵션의 부재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잠실로 이사 오면서 노마드적 가치관을 정립한 나의 고민은 그래서 그 풀옵션 중 어떤 것을 손수 마련하겠느냐는데서 출발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은 아무래도 필요하다. 한 번 맛을 알아버린 건조기도 빼놓기 어렵다. 여기서 백색가전의 세계로 빠진다. 와 요새는 가전들 진짜 좋은 것들 많다며 감탄하다가 식기세척기가 내 궁금함을 자극한다. 좋아 이것도 사볼까? 어 그런데 식기세척기는 빌트인 옵션이 있네. 주방이 어떻게 생겼더라. 빈 자리는 있나. 구글링을 해보니 싱크대를 완전히 들어내고 공사하는 방법이 있네. 여기서 인테리어의 미궁으로 들어간다. 시공이 어쩌고 자재가 뭐고 마감, 구조, 무몰딩, 배관, 후드… 잠깐 근데 식탁을 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면 거실에 큰 탁자를 놓자. 탁자들을 본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예쁘고 비싸고 탐나게 생긴 가구들이 많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금 가지고 있는 라운지 체어들이 방으로 가고, 나머지 방은 드레싱룸으로 쓰면 되나? 그럼 영화는 어디서 보지? 도배를 하면 어떤 분위기로 하지? 잠깐 그러면 거실도 맞춰야 하나? 집에서 일할 경우가 생기면 그건 또 어디서 하지? 침실을 빼면 방이 두 개 남는데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 뭐지? 주거 공간이란 어떤 의미를 가저야 하지? 집이란 뭐지? 잠깐 노매드랜드 생각을 한다. “No,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사는 게 뭔지? 이무송 선생님은 노래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인연이 끝난 후에 후회하지는 않겠지. 알 수 없는 거잖아.’ 나는 이 공간에 얼마나 오래 살고 떠나게 될까? 다시 노매드랜드 생각을 한다. “Home, is it just a word? Or is it something that you carry within you?” 모리세이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의 제목은 ‘Home is a question mark’다. 그야말로 내 상황이다. 집이라는 건 물음표인 것이다.

풀옵션. 삼음절의 단어가 주는 그 넉넉함과 평온함에 대해 생각하며 풀옵션의 삶을 벗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 추석 연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