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전날 밤에 충동적으로 보기로 결정한 <노매드랜드>는 간만에 보는 울림 센 영화였다. 어떤 자극적인 장면도 없이 숨이 턱턱 막히는 정서적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 대단한 감독님은 누군가요 찾아봤다.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래부터는 썩 유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가 이어지므로 여기서 슬쩍 경고를 해본다.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과는 무관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밴 캠핑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는 여성 주인공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아마도 남성용 화장실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성인 남성이 들어온다. 지금은 청소 중이니 이용을 못한다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남자는 대꾸도 없이 변기가 있는 칸막이로 들어간다. 주인공은 하던 청소를 그만 두고 화장실을 나가고 장면은 전 맥락과 무관한 무언가로 전환된다.
“결혼 첫날밤 프랑스로 가던 배의 침실 안에서였다. 그녀는 멀미로 기운을 잃고 누워 있었는데, 그의 오줌 줄기 소리가 너무나 세차고 너무나 권위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들린 나머지, 곧 다가올 두 사람 사이의 일이 한층 무서워졌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이야기다. 앞뒤의 이야기와는 다소 관련없는 맥락을 가진 이 단락은, 늙어버린 남편이 “겸손하다기보다는 굴욕에 가까운 행동, 즉 변기를 사용할 때마다 화장지로 변기 주위를 닦는 것으로 가정의 평화에 기여”하다가 결국 “마지막 해결책”으로 “아내가 하듯이 앉아서 오줌을 싸는” 방법을 선택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를 다룬, 1985년에 출간된 콜롬비아의 이야기, <노매드랜드>는 2020년에 개봉한, 2011년의 미국 중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