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통근
옷을 찢어먹고 살이 조금 까지는 일이 있었지만 자전거 출퇴근에 대한 열망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사건이 있고 다다음 주말, 나는 예전에 선물 받은 픽시를 좀 더 도심 주행에 적합하게 고치고자 한남동에 사는 자전거 깎는 노인을 찾았다. 나는 이런 주문을 했다.
첫째, 픽스드 기어를 프리 윌로 바꿀 것. 이유는 간단하다. 픽스드 기어는 너무 힘이 들었다. 두 번째, 뒷바퀴 브레이크를 추가할 것. 역시 이유는 명확하다. 앞 브레이크만 씨게 당겼다가 자전거가 전복되어 옷 리폼하는 취미를 얻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라이트를 달 것. 테헤란로에서 자동차에 치어 죽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넷째, 이건 생각해간 것은 아니고 즉석에서 결정했는데 딸랑이는 종을 달 것. 요새처럼 이어폰을 많이들 끼고 돌아다니는 거리에서 삐뽀삐뽀는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았다. 노인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바로 다음 주에 찾으러 가려고 했으나 원래 달려고 했던 흰색 브레이크 케이블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여 한 주 더 기다려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한남역 근처에서 바로 한강으로 접근해 잠수교를 건너 쭉 동쪽으로 이동, 잠실새내 근처에서 시내로 빠져나와서 집까지 거진 40분 정도를 탔다. 그러면서 자전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충격적으로 달라진 것은 하체에 오는 피로감이었다. 진짜 뻥치는 거 아니고 픽스드 기어인 채로 탈 때보다 한 1/5 정도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유산소 목적도 있었지만 테헤란로 언덕길을 자전거로 매일 같이 오르락내리락하면 어느 정도 하체 운동도 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음 어쩌면 생각한 만큼 운동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로 주행이 수월해졌다. 이건 진짜 놀라운 변화라서 조만간 다시 픽스드 기어로 바꾸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다.
180도 회전을 막기 위해 달았던 뒷브레이크는 놀라울 정도로 쓸모가 없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자전거 노인이 경고한 그대로였다. 미관상의 이점을 위해서인지 내 자전거에는 두 바퀴 모두 림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브레이크 패드가 그 위를 압착하니 소리도 많이 나고 제동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 자전거는 처음부터 픽시였고 자연히 브레이크라는 걸 고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형들처럼 도심에서 픽시를 조지려면 그 태생부터 조합이 맞지 않는 브레이크 대신 스키딩을 위한 말벅지를 장착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인 것 같다. 그 날을 위해 더욱 열심히 하체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지난 토요일에는 도봉산에 올랐다. 몸을 혹사시켜 체력과 근육을 얻는 계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