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마르가리타, 미하일 불가코프
오랜만에 600여 쪽이 넘는 소설을 읽었고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의 내용이 지루하거나 난해해서 속도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연말연시가 찾아오면서 책에 쏟을 시간이 없었고, 회사 사무실이 이사를 가면서 출퇴근 길에 독서를 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다. 불가코프의 작품은 처음 읽는 것인데, 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평을 받는 작품인 만큼 압도적인 소설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압도적인가? 다양한 맥락을 갖는 서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작품 해설에서 이야기하는 다음과 같은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해석의 관점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텍스트가 풍부하다는 방증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 환상 소설로 읽어도 재미있고, 초기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를 풍자하는 사회 비판 소설로 읽을 수도 있으며, 작가와 소설, 나아가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메타텍스트로 볼 수도 있고, 앞에서 말한 대로 선과 악, 예수와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종교적인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을 모두 고려할 때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에서 유일하게 인용을 하고 싶은 구절은 에필로그 직전, 2부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분이다. 거대한 서사 앞의 이 엔딩이 아주 대단한 의미를 지니지는 못할 것이기에 스포일러의 위험을 무릅쓰고 흔적을 남겨둔다.
“(전략) 잠을 자면서 당신은 더 강건해지고, 현명하게 판단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당신, 이제부턴 날 쫓아낼 수 없어요. 당신의 잠은 내가 지켜줄 테니까.” 마르가리타가 거장과 함께 그들의 영원한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고, 거장은 마치 뒤에 남겨 두고 온 햇살이 흘러내리며 속삭이는 것처럼 마르가리타의 말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으며, 거장의 기억, 불안정하고 바늘로 여기저기 찔린 그의 기억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방금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을 풀어주었듯이, 누군가가 거장을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그의 주인공은 심연 속으로 돌이킬 수 없이 떠났다. 일요일이 시작되는 부활의 밤에 사면을 받아 길을 떠난 그는 점성가 왕의 아들, 유대의 잔혹한 다섯 번째 총독인 기사 본디오 빌라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