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삶,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살로, 소돔의 120일>이라는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소설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흥미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나 겉표지를 넘기면 보이는 작가 소개에서 그런 이야기를 보고 그 "어떤 방식으로"의 흥미를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
책은 그 제목에 걸맞게 시종일관 폭력적이다. 작가의 가치 판단이 개입한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파솔리니가 그리는 1900년대 중반 로마 인근 빈민촌의 삶은 지나치게 끔찍하여 텍스트로부터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2부에 접어들어 본인의 메시지가 담긴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을 읽기 전까지 작품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특히 <살로, 소돔의 120일>이 어떤 작품인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의심의 강도가 더욱 셀 것이다.) 책 후반부 작품 해설을 인용해본다.
파솔리니는 <그람시의 유해>라는 시에서 우리네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악까지도 이해’하는 것이고, '그들을 표현하는 것은 그 악까지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옥을 이해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로 그곳에 남아 있어야 구원을 찾는 것’이라고 믿었다. <폭력적인 삶>은 파솔리니가 지옥을 방불케 하는 로마 빈민촌에 남아 그들의 악까지 이해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의지의 산물이다.
이런 작가의 가치관까지 이해하고 나서야 이 소설이 내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연출(묘사)을 바탕으로 무언가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본질을 탐구해나가는 그런 이야기. (여기에 작가의 가치관까지 비슷하다면 더욱 땡큐다. 옮긴이의 말을 쭉 읽어보건대 비록 노선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파솔리니의 다른 소설이나 영화(<살로, 소돔의 120일> 말고…)를 조금 더 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종소리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을, 불쌍한 어떤 사람이 황천길로 떠났다는 것을, 예수그리스도가 누군가를 데려갔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소리가 너무 집요해서 머릿속이 멍멍해졌다. 종소리가 그칠 때마다 이젠 완전히 그쳤다고, 종소리가 새벽 침묵에 삼켜져 체념하고 순순히 물러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당당당 소리가 세 번 들리고 다시 뎅뎅뎅 소리가 이어졌다.
이어지는 인용은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으로 누군가에겐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근 몇 년간 읽은 소설의 마무리 중 가장 여운이 짙게 남는 부분이다. 책을 다 읽은 지 이틀이 지나 읽어도 그 씁쓸함은 여전하다.
톰마소는 자기 침대에 눕자 몸이 한겨 나아지는 듯했다. 결국 아직은 이별을 고할 때가 아니었다. 몇 시간 전부터 기침이 그친 그는, 이레네가 가져온 마르살라 백포도주를 조금 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밤이 되자 몸 상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 다시 피를 토했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기침이 났다. 잘 가, 톰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