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월드시리즈
나의 사랑 너의 사랑 탬파베이 레이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전에 열린 애스트로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7차전 경기는 애초에 라이브로 볼 생각이 없었다. 내게 전적으로 유희여야 하는 스포츠 관람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같아서였다. 6회까지 0:4로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경기를 틀었다. 중간에 다소 혈압이 오르는 상황이 연출되긴 했지만 다행히 경기 끝까지 리드를 지켰다. 앞선 장면들을 잘 못 봤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도 계속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올라오는 기사들을 읽었다. 팀 창단 이후 두 번째 월드시리즈 진출이다. 당연히 2008년의 첫 진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자연스레 2008년 생각이 많이 들었다.
2008년은 탬파베이 레이스가 비단 월드시리즈뿐만 아니라 플레이오프 자체에 처음으로 올라간 해였다. 가을학기에 들었던 논술 수업에서 이 최고의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냈다. 팀 이름과 로고의 리브랜딩과 함께 통계 야구를 매우 공격적으로 적용한 구단 프론트와 코치진의 기용, 그리고 막강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지키는 야구로, 모자라는 페이롤과 그에 따른 빈약한 선수층이라는 프로 스포츠 팀으로서의 최대 단점을 극복해낸 결과였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흐름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비록 게임으로 시작된 팬덤이었으나 이렇게 리그를 견인해나가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실제로 성과를 올리는 과정이 없었더라면 이 팀에 대한 애정은 예전에 식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필리스를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레이스는 시리즈 스코어 4-1이라는 미미한 활약과 함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 타이틀에 만족했어야 했다. 양 팀의 전력차가 컸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비교적 수월하게 포스트시즌을 거친 필리스와는 달리 레드삭스와 매우 치열한 챔피언십 시리즈를 마치고 올라온 레이스가 월드시리즈에서 필리스를 꺾는 것은 매우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올해는 확실히 다르다. 이쪽도 다소 개싸움이었지만 내셔널리그 시리즈에 비하면 무난한 편이었다. 홈런 의존도가 높긴 하지만 타선도 꽤 경쟁력이 있다. 무려 한국인 타자가 4번으로 나오는(높은 확률로 한 번쯤은 4번에 나올 것이다.) 월드시리즈는 향후 20-30년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최소한 허무한 패배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이게 덕질러들이 최애가 뭔가 중요한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때 영업하는 심정인가 싶다. 위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쓴 이유는 여러분도 이번 월드시리즈는 한 번 시청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반평생을 넘게 응원해온 팀이 최고의 무대에 섰습니다. 짠내나는 미래 야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은 작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오클랜드 에이스를 꺾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은 날 호놀룰루 숙소에서 2018 블레이크 스넬 사이영 기념 티셔츠를 입고 행복해하고 있는 저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