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하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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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슬렁슬렁 백화점을 돌아다니다가 생일 시즌을 맞아 안경테 구경할 겸 크롬하츠 매장에 들어갔다. 자물쇠로 잠겨 있는 진열장 너머 덜 크롬하츠스러운 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착용해봤다. 단번에 맘에 들었다. 안경을 오래 써온 사람은 안다. 새로운 테를 쓴 자신의 모습이 대개 낯설기 때문에 구매할 때 쏙 맘에 드는 테는 별로 없고 사용해나가면서 점점 맘에 든다는 것을. 가격이 꽤 높더라도 구매 의사가 있었다. “얼마인가요?” “235만원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장을 나섰다. 사실 한 번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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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아침 운동을 20분 정도 앞당겨서 시작하고 출근도 그만큼 일찍 한다. 올해 9월 말의 아침 날씨는 어마어마하다. 근 몇 년 동안 이렇게 쾌적한 공기와 얌전한 햇살을 서울에서 느낀 적이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문득 오늘 아침에 운동을 가면서 지난 3년 동안 딱 이 시기에 한국을 떠나 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좋은 걸 눈 앞에 두고 이역만리에서 외화 낭비를 하다니…는 뻥이고 여행 가고 싶다. 인버전 회전문을 통해 산소 마스크를 끼고 열심히 뒷걸음질로 달리더라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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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를 사고 인화한 사진이 제법 많아지면서 느낀 것은 필름 카메라의 시대가 저물어서인지 맘에 드는 앨범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밀레니얼들의 유년 시절에 있었을 법한 졸업앨범 스타일의 두툼한 양장본 스타일이나 되도 않는 영단어(뭐 예를 들면 프렌드십, 메모리, 트래블 같은)와 클립아트에서 가져왔을 법한 일러스트가 적당히 어우러진 플라스틱 재질의 앨범, 딱 이 두 종류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중 무지에서 정말 무지다운 사진 앨범을 찾았고 최근에 인화한 사진을 전부 끼워넣었다. 앨범을 넘겨보는 맛이 생겼다. 쭉 사진들을 훑어보니 필름 카메라를 바꿀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라이카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