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결 블로그 ✍️ 💻 📷 🍻

부키티

심즈1이 발매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을 제대로 하는 회사였던 EA에서 만든 이 게임의 재미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품 CD를 산 친구네 집에서 슬쩍 본 게임이었는데도 나는 게임에 깊이 빠져들었다.

당시 심즈에는 직업과 직위라는 개념이 있었다. 직위에는 말단부터 마스터까지 한 6-7단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직위를 올리기 위해선 각 직업마다 조금씩 다른 조건들을 만족해야 했다. 아직까지도 이 조건 중 무언가 하나를 달성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는 기억이 난다. 출근하기 전에 심의 여러 컨디션을 높은 수준으로 맞춰 직장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나이 13살의 초등학생이 성인 인간의 삶을 대리하여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기상을 해서 출근하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아서 뭔가 행동을 취할 시간도 부족하고 행동을 취해서 컨디션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봐야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이 놈의 심을 일터에 보내놓으면 모든 지표가 쭉쭉 떨어지기 시작한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거의 시체 수준이다. 그 때부터 마찬가지로 뭔가 이것저것 하려고 해봤자 효과는 미미하다. 그리고 또 다음 날이 온다. 이제는 이게 엄청나게 현실적인 시나리오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어린 게임 플레이어에겐 승진이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 다시 심즈를 플레이해보면 승진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13살의 나는 에디터를 사용했다. 에디터로 컨디션을 강제로 끌어올릴 수는 없었지만 게임 내의 시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출근 전 심의 상태를 거의 최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뭐 주3일 출근 같은 개념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주3일 출근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겠지…

주5일 출근하는 직장에 다닌 뒤로 이 일화(?)를 종종 떠올린다. 일잘이 되기 위한 이런저런 스킬들에 대한 얘기는 대부분 유효한 것들이지만 그에 앞서 이런 기본적인 조건이 상황에 따라 업무 효율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출근하기 전에 부키티 @bookitea.artisan 를 먹는다. 나의 내일, 나의 컨디션, 나의 업무 효율성, 나의 승진을 위해서. 는 헛소리고 나의 부기를 위해, 엄밀히는 de부기를 위해 먹는다. 맛있다. 너도 먹어봐라. #booki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