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아주 오랜만에 읽는 셈인데, 지금 와서 읽어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좀 더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가치관으로 그의 작품을 조명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그의 문장을 받아들이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쿤데라의 문장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표현들은 '글은 이런 사람들이 써야 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게 하는데 여전히 모자람이 없다.
매일 점점 더 많은 얼굴들이 등장하고 그 얼굴들이 날이 갈수록 서로 닮아 가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자아의 독창서을 확인하고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유일성을 확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아의 유일성을 가꾸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덧셈 법과 뺄셈 법이다. 아녜스는 자신의 순수한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자아에서 외적인 것과 빌려온 것을 모두 추려 냈다. (이 경우 연이은 뺄셈 때문에 자아가 0이 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로라의 방법은 정확히 그 반대다. 자신의 자아를 좀 더 잘 보이게 하고, 좀 더 파악하기 쉽게 하고, 좀 더 두텁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덧붙여 그것에 자기를 동화했다. (이 경우 덧붙은 속성들 때문에, 자아의 본질을 상실해 버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쓴 것이 그가 노년에 들어섰기 때문인지, 누군가의 말마따나 "자유 서방 세계"의 생활을 온전하게 담아낸 첫 소설이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인지, 책에 담겨 있는 메시지와 세계관엔 무게감이 없고 날카롭지도 않으며 구시대적이고 젠체하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읽었던 쿤데라의 대표작들도 이런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다.
연상 여자가 연하 남자에게 줄 수 있는 것,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랑이 결혼의 위험 부담과는 거리가 멀게 펼쳐질 거라는 확신이다. 어떤 경우에도, 미래가 창창한 남자가 여덟 살이나 나이 많은 여자와 결혼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결론을 내리자면, "불멸"이라는 소설은 문학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문화적인 의미는 에 글쎄 잘 모르겠다. 위키피디어를 뒤적거리면서 쿤데라가 현재 91살이며 2014년에 신작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혹시 모르니까 한 권만 더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