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마크 랜돌프
글쓴이가 넷플릭스의 시작과 운영에 들어간 고뇌와 통찰을 각 잡고 담아내겠다고 쓴 책이 아닌 만큼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창업 이야기로는 수작인 책이다. 천부적으로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인생의 가용 자원 대부분을 끌어 쓴 시기의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한다? 실패할 수 없는 내러티브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일도 그것과 비슷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대바히기 위해 긴 시간을 들여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둘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만 해둔다. 강에서 떠내려갈 때 붙잡을 수 있는 바위가 있는지, 절벽에서 떨어질 때 붙잡을 만한 게 있는지 살핀다. 대부분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면? 글쎄, 직접 해결해야 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그게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제안은 이것이었다. DVD 플레이어를 사는 모든 고객에게 넷플릭스 DVD를 세 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주면 어떻겠어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니라 닭과 달걀을 동시에 시작할 방법이었다.
디테일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책 초반의 극도로 높았던 해상도가 더 최근 시점으로 흘러감에 따라 떨어지는 느낌은, 그만큼 넷플릭스라는 회사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했다는 점과 초기 사장으로서 마크 랜돌프의 비중이 점점 떨어져갔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책의 내용에 흠뻑 빠지고 마크 랜돌프란 사람에 호의를 가지고 책을 읽어나간 사람이라면 뭔가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지만, 마크 랜돌프는 또 이런 지점에서 기가 막힌 선택을 한다. 내가 비슷한 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온다면 분명히 떠오를 사례일 것이다.
넷플릭스라는 회사가 한 가지 꿈이었고, 내가 직접 운영하겠다는 게 또 다른 꿈이었다. 그리고 그 회사를 성공시키려면 내가 가진 한계를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나는 회사를 세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이라 팀을 모으고, 문화를 만들고, 간단한 구상만으로 회사를 세우고, 사무실을 마련하고,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초기 단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빠르게 성장해야 하고, 그러려면 완전히 다른 능력이 필요했다.
영화와 관련된 회사지만 사실 영화 이야기가 별로 나오지 않는 이 책에서 웃으면서 읽은 대목은 여기다.
사람들이 무슨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진짜 좋아하는 영화를 말하지 않는다.
보통은 편리하게 <펄프 픽션>이라고 대답한다. 영화광이나 개성이 강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그 영화를 좋아한다. 시나리오가 좋고, 촬영 기술이 좋고, 새뮤얼 L 잭슨과 존 트라볼타, 우마 서먼의 연기가 좋다. <오즈의 마법사>를 빼면 아마도 <펄프 픽션>이 가장 여러 번 본 영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