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티셔츠
지속가능함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면 피해갈 수 없는 주제가 소비다. 어떤 소비가 제일 좋은 소비일까? 현재까지의 결론은 소비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소비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으로서의 존엄성과 사회성을 내던지지 않는다면 소비를 아예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차선으로 좋은 소비는 무엇일까? 많은 엣지 케이스가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결론을 짧은 문장으로 옮기면 작고 비싼 것을 사는 것이다. 거대한 1L짜리 바디워시가 있다면 아담한 크기의 300ml 바디워시보다 아무래도 더 막 쓰게 된다. 싼 물건은 비싼 물건보다 비교적 더 막 다루게 되고 수선하는데 들이는 노력보다 폐기하고 새로 소비하는 것이 더 비용이 적어 또다른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두 가지 논리를 생활 전반에 걸쳐 적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살 필요가 없으면 사지 않고 뭘 사겠다면 항상 작고 비싼 것을 산다.
수 개월 동안 원칙을 잘 지켜왔다. 하지만 할인 앞에서는 이 아름다운 논리가 다 소용없다. 프로틴 처묵처묵하고 근육 돼지가 될 것이다. 갑자기 이성의 끈이 풀렸는지 오늘은 진짜 오랜만에 옷을 샀다. 내 삶에 하등 쓸모없는 반팔 티셔츠 두 장. “한결님은 예쁜 티셔츠가 많아요.”라는 칭찬과 할인 소식을 연달아 접하니 막아낼 길이 없었다. 오늘도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고 반성하며 술을 먹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