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맨부커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구글링을 하다보면 이 소설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훌륭함이 "충격적인 반전"에 있다는 문구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소설이 출간된 2011년부터 2020년까지의 약 10년 동안 한국인들이 "충격적인 반전"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서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충격"이나 "반전"이 비교적 시시하게 느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만약 앞의 말이 틀렸다면 소설의 마케팅 주안점을 엉뚱한 곳에 두었다는 뜻이 되겠다.
어머니가 몇 년 전에 가족을 버렸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그와 여동생을 감당해야 했다. 당시는 '한부모 가족’이라는 말이 상용화되기 훨씬 전이라 '결손가정’이란 말을 썼고, 에이드리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결손가정 출신이었다. 그에겐 마땅히 실존적 분노의 저장탱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사실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우리 셋은 에이드리언 몰래 그의 상황을 이리저리 따져본 후, 하나의 이론을 정립했다. 행복한 가족생활을 영위하려면 애초에 가족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니면 최소한 함께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런 분석을 하고 나니, 우리는 에이드리언이 더 부러워졌다.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