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옌 중단편선, 모옌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모옌 중단편선>이다. 전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201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중간중간 개저스러운 내용이 걸리기는 하지만 요재지이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중국 고전의 자연 신비주의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묘하게 뒤섞어 놓은 그만의 "환각 리얼리즘"이라는 장르는 퍽 인상이 깊었다. 재밌는 점은, 책을 쭉 읽어내려가며 아마 분명히 작품 해설쯤에 요재지이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레퍼런스를 역자가 등장시키겠지 싶었는데 너무 분명하게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일반인 신분으로 이 정도 키워드를 예상한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해방 이후 경제생활이 나아지고 위생 환경도 개선되면서 영아 유기도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에 들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양상이 훨씬 더 복잡해졌다. 이 시기에 유기된 영아 중에는 남자아이가 거의 한 명도 없었다. 얼핏 생각하면 계획 생육 정책이 일부 부모들을 야수로 만들어 버린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와 같이 영아를 살해하는 원흉은 전통적인 남존여비 관념이다.
메뚜기, 작디작은 절지동물, 사람이 짓밟으면 단 한 번에 한 무더기를 짓이겨 죽일 수 있는 그 작은 것들이 떼로 뭉치자 그처럼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힘이 되어 마른 풀과 썩은 나무를 꺾고, 모든 것을 파괴할 만한 힘을 갖게 되었다. 만물의 영장이라 호령하던 인류는 그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으니 여기에 깊이 새겨봐야 할 이치가 숨겨져 있다. 메뚜기, 그 더러운 곤충은 늘 부패한 정치와 전란으로 어수선해진 세월과 연결된다. 마치 난세를 상징하는 분명한 부호 같은 것이다. 여기에 바로 심오한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
하늘이 마치 무색의 물처럼 투명해졌다. 그 후 태양이 한순간 튕겨 올라왔지만 빛줄기도 없고, 눈이 부시지도 않앗다. 커다란 타원형의 태양, 그때는 태양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태양이 위로 자꾸만 재빨리 올라갔다. 마치 스위치를 켠 것처럼, 수없이 맑은 붉은 빛줄기가 갑자기 비치기 시작하더니 하늘을 밝게 비추고 땅을 밝게 비추었다. 하늘과 땅 사이가 갑자기 휘황찬란해지고, 풀잎 위의 이슬방울이 마치 진주처럼 반짝였다. 강물 위에 금색 빛줄기가, 길게 늘어진 태양이 가로놓여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으로 빛줄기가 물러났다. 들판에는 여전히 정적이 감돌았다. 할아버지는 아랑곳없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