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명백한 가짜뉴스와 난무하는 혐오로 쌓인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희대의 집단 성착취 사건의 참상을 보며 이 시대가 그간 감춰온 이면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다시 한 번 느꼈다. 국민일보의 기사를 지난 주말에야 읽었다. 그 전에는 사실 기사를 읽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언제 들어갔는지 기억도 안 나는 청와대 웹사이트에 접속해 관련된 청원들의 참여인원수를 1씩 올렸다. 그럼에도 무기력함은 여전했는데 사회에 만연한 미소지니, 성범죄에 무감한 남성들, 그 범죄들에게는 언제나 관대한 법규와 사회적 인식,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특정 사건들에는 유독 비대칭적으로 보이던 수사 기관의 태도, 논지를 이탈하고 사태를 호도하는 궤변 등 남성주의적인 사회에서 기인한 총체적인 문제들 앞에서 유난히 그 숫자 1은 작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숫자 1이 모여 2백만이 넘는 수가 되어 대통령의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며(물론 우리는 그의 특별지시가 만족할 만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내 무기력이란 게 얼마나 수동적이었는지 다행히 재확인할 수 있었다. 가해자들에겐 엄중한 처벌을 내리고(그에 따른 합당한 신상공개도 포함하여) 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법률 개정이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