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마음, 제현주
2020년 11월에 쓰는 글로 별 내용은 없을 예정이다.
벌써 떠올려보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2020년 3월에 참여했던 랜선 트레바리 첫 번째 회차에 읽은 책이다. 당시 후보 중 하나였던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은 딱 한 문장짜리 촌평밖에 없는데,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들이 써 있긴 하지만 결국 저자의 이야기가 노오력을 하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곳으로 수렴한다라는 것. 스타트업에서야 비교적 낯이 익은 "일하는 마음"이긴 하지만 이런 제언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는 그다지 좋은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접어놓은 책장을 하나씩 펴보면서 어떤 내용들을 기억하고 싶었는지(여기서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란, 꼭 좋아서만은 아니다. 좋지 못한 것도 나중에 다시 한 번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접어둘 때도 있다.) 쭉 훑어봤는데 하나 더 기억났다. 처음부터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 글을 쓴 게 아니고 이때 저때 이 상황 저 상황 작성한 글을 차곡차곡 모아 책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전체적인 짜임새가 떨어진다. 하지만 글 하나하나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고 쉽게 읽히는 문체로 쓰여졌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언가 채워짐으로써 얻은 것이 있다는 느낌보다 비워내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는 느낌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뛸 수 있는 1킬로미터에 집중하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조금씩 늘어난 것처럼, 삶의 트랙에서도 어느 날인가 나도 모르게 2.5킬로미터를 뛸 수 있게 되었다. 하루 계획에서 한 달 계획으로, 그다음엔 한 분기 정도의 계획으로 생각의 용량이 늘어나더니, 요즘에는 다시 5년짜리 목표나 계획을 세워보곤 한다.
이런 환희와 실망의 주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어떤 날 갑작스럽게 생겨나는 새로운 능력은 그날따라 나도 모르게 수행한 다른 기본기들 덕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나의 새로운 동작은 다른 수많은 동작을 딛고 이루어진다.
과거의 OO와는 같을 수 없는 지점들, 얼핏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작은 지점들에서 변화가, 가끔씩 혁신이 일어난다. 너무 많은 사례를 아는 탓에 오히려 이런 지점들을 놓치게 된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새로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과거에는 명확했던 기준으로 더 이상 분류할 수 없는 사람과 사례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애매함을 포용해주는 영역이 필요하다. 과거의 기준으로 보아 단일하고 깔끔한 목표는 의미 있는 차이, 지금 막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억누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