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
하지만 고위 관리자, 연구직,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 해당하는 전문직 일자리는 IT 기술로 대체되지 않기 때문에 고용 규모가 줄지 않는다. 또 단순한 일을 하는 저숙련 일자리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중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일자리와 일자리에서 얻는 임금의 양극화는 심화된다.
90년대생의 세계에서 부모 세대가 대졸 사무직으로 중산층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자녀 세대인 그들이 명문대 졸업장을 받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예전처럼 지방 국립대를 졸업해서 지방에 위치한 대기업에 취직해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거나 또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전자 산업 대기업 생산직으로 서울의 대졸 화이트카라 부럽지 않은 고소득을 얻는 삶의 기회는 오늘날 20대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흔히 이야기하는 '집안 좋은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는 속설은 정말로 참이다. 양육 환경이 좋은, 즉 부모가 경제력이 있고 학력이나 직업 등 사회적 지위도 뒷받침되는 계층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는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비인지적 능력도 다른 계층의 자녀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리고 비인지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 등을 통한 교육 투자는 결실을 맺는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다. 계층이다.
결국 30대 중반까지 포괄한 대규모 탈민주당 유권자 집단이 수년 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20대가 30대 중반 정도가 되는 2022년 대선이나 2024년 총선을 전후로 해 기존 정당 체제에 대한 불만과 비당파적 성향이 강한 유권자 집단이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정당 일체감이 약하거나 없는 유권자층이 대규모로 존재할 경우, 유권자들의 정당 간 선호 체계가 크게 바뀌고, 각 정당의 소구 계층이 변화하는 '재정렬’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 정치학자 크리스티 앤더슨은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당선과 그 이후 민주당 세력의 확대를 가능케 했던 것은 기존 정당이 포섭하지 못했던 비당파 유권자층을 공략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대규모 비당파 유권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묶어내는데 성공한 것이 이른바 '뉴딜 집권 연합’의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다. 2020년 이후 한국 정치 지형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통 이러한 종류의 담론은 왜 교육 투자가 급증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살펴보지 않고 단순히 ‘교육의 확대’ 정도로 언급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부모 또는 교육의 당사자인 자녀들이 왜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과 시간을 교육 투자에 투입하느냐다. 그것은 성장률의 급격한 하락 또는 저성장기 진입과 연결 짓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과거보다 더 늘어난 인적자본 투자와 한정된 일자리 사정이 맞물리면서 결국 인적자본 투자의 군비 경쟁 강도는 강화된다. 그리고 그 군비 경쟁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 중상위층과 나머지 계층의 격차는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최소 수준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확보다. 노동시장의 변화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부조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도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중요하다. 또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상위 10퍼센트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