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엔도 슈사쿠
연말에는 취향에 썩 맞지 않은 이른바 실용 서적들을 읽다보니 좀이 쑤시는 느낌이었다. 1월에 접어들어 금주 생활에 적응하는 기간을 조금 보낸 뒤 오랜만에 민음사 책 몇 권을 주문했다. 그 중 처음 꺼내든 책은, 연휴에 떠나는 도쿄 여행의 무드를 좀 미리 느끼고자 하는 마음에 고른 일본 작가의 작품이었다. 아주 생소한 이름은 아니다.
책은 잘 읽었다. 책이 출간된 시기를 보면 이 책이 받은 호평에도 고개가 끄적여진다. 1992년에 초고가 완성되었고 출간은 1993년에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지나간 시대의 낡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설정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 누가 봐도 자전적으로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가치관들은, 내가 스트레오타입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일본 전후 세대 엘리트의 전형에 닿아 있었다. 2020년의 시대적 지향점과는 단절된 어느 옛 시대의 역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제야 막 120세 시대의 2분기에 접어든 내게 (시간의 관점에서) 삶의 가장자리에 있던 노작가가 풀어놓은 삶과 죽음의 여러 의미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소베가 몸을 일으킨 뒤에도 그네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저 홀로 흔들렸다. 마치 그의 아내가 죽고서도 그 말이 남편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듯이. 우리들 일생에서는 무엇인가 끝났어도,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