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들
남편이 회식 있는 날 일찍 집에 들어와 혼자 밥을 먹고 멍하니 있는데 자기 인생은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일 것 같아 우울했다는 것이다. -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정지민, 52쪽 다섯 번째 문장.
11월에는 회사에서 주관하는 "작심삼십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매일 책을 읽고 인증하는 테마로 참여하여 3권의 책을 읽었다.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페스트>,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세 책에 대해 모두 조금씩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프로그램이 끝난 12월에서야 뒤늦게 자판을 두드려본다.
"페미니즘 프레임"이라는 꼭지로 묶여 출간된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는 "페미니즘"과 "결혼"이라는, 공존이 어려워보이는 두 가지 개념을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큰 흥미를 끌었다. (물론 저자가 지인이라는 점이 그 흥미에 한몫을 더한다.) 문돌이답게 폭 넓은 책, 영화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본인과 주변인들의 경험,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일면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선명하지도 급진적이지도 않은” 페미니스트의 글인 만큼 "페미니즘 프레임"이라는 시리즈 이름에 오들오들 떨면서 책장을 넘길 필요가 없는 간결한 문장들이다. 그만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권할 수 있는 책이다. 지인이 저자기 때문에 궁금하면 직접 사서 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따로 연락을 주면 빌려줄 수도 있다. 요새 책들은 유튜브에서 다이제스트로 접하고 맘에 들면 양장본으로 구매해서 간직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니 빌려보고 괜찮다면 한 권 정도 살 수도 있지 않나.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내가 책을 읽고 이해한 바로 그 대답은 예스다.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원의 수단이 꼭 결혼일 필요는 없다. 아니, 사실 저자는 결혼보다는 비혼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이렇게 질문해보자.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결혼은 악인가? 이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이다. 현대로 오면서 발전하고 확장된 개념의 결혼은 많은 부분에서 가치중립적인 플랫폼에 가깝다고 본다. 문제는 이 플랫폼을 둘러싼 기존의 권력 구조와 관성적인 인식의 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 같은 수정주의 비혼주의자는 비혼 자체에 대한 지향보다는 결혼의 안티테제로서의 비혼에 동조하는 편인데, 결국 이런 반골의 싹을 파고들면 결혼 그 주변의 비합리적임에 대한 반감이 원인이다.
하지만 플랫폼은 가치중립적이며 만악의 근원은 사회 구조와 그 이용자에 있다는 외침은 공허하다. 회사에 강연을 온 이수정 교수는 라인이라는 플랫폼이 범죄의 도구로서 사용된다는 점을 꼬집으며 플랫폼 차원에서의 대책과 책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는 이 강연에서 운이 좋게 친필 서적을 득했다.) 글자의 모양새마저 미래적인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가 결혼이라는 시스템에 비혼이라는 안티테제로 맞설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그 내용과 형식을 짐작할 수 없는 새로운 합의 방식으로 나아갈 것인지 맥주를 먹다 보니 말은 길어지고 억지로 책 3권을 엮으려니 논지가 흐려진다. 사르트르가 썼다는 까뮈에 대한 회고로 졸필을 마친다. 왠지 내 마음 한 켠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당신은 그 양쪽 중에서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외견상의 그러한 모순은 우리들 자신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당신은 거의 하나의 모범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내면 속에 우리 시대의 갈등을 요약하고 있었으며 그 갈등을 사는 치열함을 통해서 그것을 극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