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애니웨이
최근 트위터에서 본 인상 깊은 표현은 “동국대적 분노”라는 것이었다. 한국 영화를 그렇게까지 많이 보지 않은 내게는 모호한 표현이긴 하지만 한국 영화를 즐겨보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겐 크게 와닿는 표현이었나보다. 한예종, 서울예대, 동국대 출신의 배우들을 관통하는 선호하는 얼굴상이 있다는 트윗도 작은 반향이 있었는데 다시 한 번 해당 트윗 타래를 찾아봐도 어떤 뉘앙스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아마 그 배우들의 연기도 낯설고 극중 캐릭터가 가진 여러 맥락도 모르기 떄문이겠지만 여하튼 재치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로렌스 애니웨이>의 포스터를 처음 본 것은 201x년 재동의 어느 카페 화장실에서였다. 스틸컷에서부터 물씬 풍겨오는 “예술 영화”의 느낌에 매료되었는데 그 이후에 딱히 감상을 목적으로 뭔가 검색한 적은 없었다. x년 정도가 지나서야 자비에 돌란이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도저히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야 좋을지 모르겠는 유산소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게 되면서 드디어 이 부담스러운 러닝 타임을 가진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다채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굳이 그걸 꼬아서 이야기하면 많은 게 과도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도함은 나름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취향이 맞는 관객들에게는 감정선을 극대화하는 훌륭한 장치로서 작용한다고 본다. 다만 나는 이 영화를 몇 차례에 나눠서, 그것도 트레드밀 위에서 봤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영화관 같이 몰입을 강요하는 환경에서 조금도 쉬지 않고 이 영상과 음악을 감상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과도함이 문자 그대로 과도하게 전달될 수는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부터는 아주 약한 스포가 있다.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보면 누구나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나는 사전 정보가 0인 상태에서 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을 해봤다.
트랜스젠더라는 성정체성을 가진 로렌스 알리아가 통념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원했던 방식으로 사회에 나선 바로 그 첫 시도로서 ‘화장’을 하고 ‘여성’의 복식을 따르는 장면은, 돌란이 워낙 극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가 의도한 바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지적이다. 이 이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저 이런 의문이 들었다는 정도로 갈무리를 해본다.
하지만 아직 이 사회에서 이런 고민은 잠시 미뤄도 되겠다는 확신은 있다. 트레드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영화를 보던 중, 내가 속해 있는 어떤 대화방의 메시지가 아이폰 화면에 푸시 알림으로 떴다. “남자가 봐도 반하겠네요”. 몇 글자도 안 되는 저 악의없는 메시지에 우리가 타파해나가야 할 관습적 굴레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침 배경에서 <로렌스 애니웨이>가 재생되고 있어서인지 그 대비는 더욱 선명했다. 극 중에서는 서로를 향해 있던 “돌란적 분노”가 실제로 뿜어져야 할 방향은 바로 저런 근거없는 고리타분한 생각들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오늘도 나는 유산소 운동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