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광고
한국인의 99%가 페이스북에 접속해 있지 않은 한가한 오후의 뻘소리를 해본다. 지지난 금요일 합정으로 향하는 퇴근길 2호선 지하철, 광고 하나에 묘하게 눈에 띄었다. "미국 갈 땐 XXX"라는 문구와, 굳이 강조된 심카드 디테일을 보아하니 아마도 미국에서 데이터 사용이 가능한 심카드를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여행 준비를 마치는 것을 장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의미가 있고 수익화가 가능한 사업 같아 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 광고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아주 쉬운 일이었겠으나 지지난 금요일 합정으로 향하는 퇴근길 2호선 지하철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저 광고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말이다.
원인은 저 지도 디테일에 있었다. 써 있는 문자는 영문 알파벳이었으나 단어로만 놓고 보자면 미국 그 어떤 곳에서도 사용하지 않을 도로명과 건물명만 보였다. "미국 갈 땐 XXX"라고 힘차게 외치면서 막상 광고 속 지도는 미국이 아니라니. 미국 심카드야 현지에 가서 사도 그만인, 따라서 XXX가 국내에서 미국 현지 사용 가능한 심카드를 팔든 말든 관심을 주지 않았을 사람이, 저 묘하게 신경 쓰이는 부분을 캐치하고 나니 대체 정확히 뭘 하는 서비스인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간질거렸다. XXX를 검색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아무래도 그것이 저 짐짓 허술해보이는 광고가 의도한 바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허허실실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봐도 저 광고 속 지도는 저렇게나 허술할 수가 없다. 이상한 지역에 포커스를 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뭔가 디테일이 텅텅 비어 있다. 아직도 궁금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광고일까. 담당자는 누구일까. 승인자는 누구일까.
오늘 잠깐 여유가 생긴 차에 지도 속 건물명을 검색해봤다. 자카르타 남부 지역의 어느 주거 건물로 추정된다. 미국 심카드에 대한 광고에 나타난 자카르타의 어느 지역, 그 둘의 관계성에 대해선 좀 더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해보이지만 이 위대한 연구는 후대의 누군가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우중충한 토요일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