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X시대역량 3
반려맹(TAPCPR)은 대만의 동성결혼 합법화 및 시민권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로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탐방 셋째 날 오전에 대만여성센터에서 짧은 모임을 갖게 되었다. 2009년부터 단체를 이끈 변호사 빅토리아 쉬의 열변이자 달변은 이해도 잘 되고 공감도 잘 되었지만 왜 굳이 결혼이라는, 내 입장에서는 다분히 보수적이고 경직된 제도를 고집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진보운동의 목표라고 하기엔 그 태생적 한계가 명확해보이는데 어째서 운동의 종착점이 좀 더 유연하고 범용성 있는 형태의 무언가라기보다 결혼이어야 했을까.
빅토리아는 대만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대중적 여론을 형성한 계기가 된 사건으로 자크 피쿠 교수의 자살을 이야기했다. 35년간 함께 지내온 파트너가 투병 생활에 들어가고 결국 사망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가족 구성원으로서 아무런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상황을 비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안타까운 사건이 내게 주는 울림은 매우 컸다. 가족이라는 법적 울타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결혼이란, 나 같은 건방진 비혼주의자가 생각하는 구시대적이고 융통성 없는 인습이 아니라 동반자와 꾸려나갈 평안하고 단란한 삶에의 최소한의 보장이었다.
2시간 정도 진행된 간담회를 통해 건방진 비혼주의자는 필요와 권리로서의 결혼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투쟁은 투쟁대로이고 연대는 연대대로, 활동은 활동대로이겠지만 나와 생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모임이 끝나고 대만여성센터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짧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