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지휘하라, 에이미 월러스, 에드 캣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에드 캣멀이라는 사람의 <창의성을 지휘하라>라는 책을 읽었다. 살면서 "이런 종류"의 책이라고는 관심을 가져본 적도, 억지로라도 읽어본 적도 없었지만 회사에서 리드를 위해 특별히 챙겨준 책이었던 만큼 미간에 주름을 잡고 찬찬히 읽어봤다. 책을 몇 장 넘기고 나자 왜 이런 종류의 책이 출간되는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 시장과 효용성에 대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으며, 이 책을 시작으로 회사에서 읽어보라고 던져주는 책들은 꼭 시간을 내어 꼬박꼬박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18-19 시즌의 이한결에게 적잖은 임팩트를 준 책이라 정리할 수 있겠다. 평생 관심이 없던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만 술을 안 먹은 지 일주일이 되어가니 참으로 먹고 싶은 것이다… 에드 캣멀이고 스티브 잡스고 픽사고 디즈니고 간에 포카라에서 먹었던 저 씁쓸한 맥주 한 모금을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래서 나는 더 영리한 인재를 채용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앨비 레이 스미스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내가 가장 신뢰하는 동료가 됐다. 그 후 나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다. (중략) 나는 대학원 시절에 유타대학 대학원 같은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컴퓨터그래픽 연구소에서 그 방법을 터득했다. 그 방법이란 비록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제나 더 나은 인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영화 제작은 수백 명의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지휘 계통이 필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소통 구조와 조직 구조를 혼동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애니메이터는 상관에게 사전 보고할 필요 없이 모형 제작자에게 직접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모든 임직원에게 직위나 시간에 상관없이, 누구든 문책받을 걱정하지 말고 다른 임직원에게 자유롭게 얘기하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프로덕션 단계 이전에 각본을 완성하는 것이 여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작품을 만들다 보니, 이런 목표가 비실용적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작품의 진로를 성급하게 미리 확정짓는 것은 작품이 파멸의 길로 들어설 확률을 높일 뿐이었다. 제작 공정을 개선해 더 빠르고 더 적은 비용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픽사 경영진이 지금도 계속 추구하고 있는 방향이지만, 이것이 목표일 수는 없다.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나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전망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데, 그 때마다 통찰력 있는 답변을 내놓고자 최선을 다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미래를 잘 모른다. 픽사 감독들이 자신이 구상하는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정확히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앞으로 어떤 기술이 나와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바꾸어놓을지 상상할 수 없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상하고 미리 대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지침으로 삼는 원칙들을 지키며 본래 의도에 맞게 목표를 추구해 나갈 뿐이다. 이와 관련, 유타대학 시절 알게 된 인연으로 내게 스티브 잡스를 소개해준 컴퓨터공학자 앨런 케이는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