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트레킹 4 : 히말라야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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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쯤 읽었던 책 중에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라는 것이 있다. 21살의 이한결은 책에 적힌 그의 언행에 사뭇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싸이월드에 그렇게 적었던 기억이 난다. 31살의 이한결이 돌아보는 <달라행>은 그다지 설득력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이분법의 모음집에 가깝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세상에는 선한 거짓말과 악한 거짓말이 있다. 사람의 성격엔 외향적인 면과 내향적인 면이 있다. 블라블라블라.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추상적 개념과 실존하는 무엇이란 어떻게든 상호배타적인 두 집합으로 나눌 수 있는 거라 저런 명제는 참이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이야기다. 아, 예외는 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오늘 비커스가 그랬다. 네팔에는 두 종류의 벌이 있단다. 하나는 집에서 키우는 벌, 다른 하나는 야생벌이랬다. 세상에, 지구 상에 벌이 아예 없는 곳을 제외하고 저 두 종류가 아닌 벌이 존재하는 나라가 있을까? 그 말을 하고 발걸음을 옮기던 비커스의 뒷모습에서 나는 달라이 라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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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정말 좋은 기세로 산을 오르던 K의 눈물이 터진 것은 밤부를 막 떠나 도반으로 가는 길 위에서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기운이 없어서 제대로 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저 말을 할 때까지 저 고집센 사람이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쿡쿡 쑤셔지는 기분이 들었다. 잘 달래고 좀 괜찮아질 때까지 K의 배낭을 내가 들고 가기로 했다. (K는 지금 내 앞에서 아주 좋은 컨디션이 되어 싱글벙글하며 피자를 먹고 있다.) K의 가방은 그렇게 무겁진 않았으나 일반인인 내가 같이 들고 가기엔 확실히 부담이 되었다. 느낌상 모두 합쳐 12kg에 육박하는 것 같았다. 한 30분 정도 들었나, 내 발걸음이 K보다도 늦어지기 시작한 걸 느끼고 다시 배낭을 K에게 넘겼다. 원래도 그랬지만 더욱 비커스를 존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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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트레커를 만났다. 대부분 포터를 대동해서 다니지만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다들 적당한 짐을 지고 다니는 편이다. 가끔 지나치게 가벼운 행색을 한 사람들의 앞뒤엔 어김없이 머리로 짐을 받쳐든 포터들이 따랐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일급으로 계산하여 적당한 댓가를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저렇게나 육체적으로 부려먹는 것이 옳은 일일까? 만약 그 부림의 방식이 육체적인 게 아니라면 조금 덜 불편할까? 후기 자본주의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기업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어떨까? (에이전시의 정책 덕에 비교적 가벼운 편이긴 하지만) 당장 내 눈 앞에서 우리의 짐을 같이 짊어지고 가는 비커스를 두고 나는 떳떳하게 가타부타 할 수 있는가? 정도의 차이가 나에게 어떤 도덕적 만족감을 주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히말라야까지(여기서 히말라야는 코스 중 어느 거점의 이름이다.) 오르는 코스 막바지엔 너무 힘이 들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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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 가져온 여러 물건의 여러 브랜드 중 하나 홍보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단연 아이소플럭스다. 캡과 가방, 목도리까지 기능성이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지만 말이 길어지면 흥미를 가지지 않을 테니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