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트레킹 3 : 시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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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고되다. 그래도 할 만한 수준이다. 가장 무거운 짐을 든 비커스가 항상 앞장을 서고 그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짐을 든 내가 중간에, 제일 가벼운 배낭을 멨지만 그만큼 제일 귀여운 K가 후방에 선다. 가장 힘들어 하는 K를 챙기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몫이다. 이제는 입모양만 봐도 얼마나 힘든지 알아차릴 수 있다. 앙 다물었지만 입꼬리가 수평을 유지한다면 힘이 날 만한 말을 던질 타이밍이다. 아직까진 정말 잘 가고 있다.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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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리에 물렸다. 복장이나 동선을 고려했을 때 노출된 순간은 찰나인데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셈이다. 침대에 엎드려 글을 쓰던 나를 보고 먼저 소스라치게 놀란 건 K, 피범벅(은 과장이 아니고 진짜였다.)이 된 발을 돌아보고 뒤늦게 놀란 것은 나였다. 아마도 내 오른발등을 뜯은 것으로 추정되는 거머리는 숙소 천장에서 대롱대롱거리고 있었다. 침착하게 발을 닦고 반창고를 붙인 뒤 천장의 녀석을 사로잡았다. 거머리에 물린 소감을 요약하면, 정말 쥐도새도 모르게 물리고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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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까지 가는 트레킹 코스는, 비커스에 의하면, 하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 현지인들 사이에선 코리안 코스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큰 거점에는 “1. 한국라면 2. 김치찌개 3. 백숙 4. 김치”라고 쓰여진 간판을 여럿 볼 수 있으며 롯지가 아닌 쉼터 대부분에서도 한국인 등산객들이 혹할 만한 메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코스에 존재하는 모든 롯지와 쉼터는 비단 관광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삶을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시내를 한 번 나갔다 오는 것만 해도 며칠이 걸리는 여정이다. 휴식없이 생필품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70kg 무게의 가스통을 짊어진 당나귀도, 말도, 소도 휴식할 곳이 필요하다. 모든 공사 자재를 등에 지고 머리로 그 무게를 지탱해가며 가는 이들의 무리를 볼 때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이 신성한 삶의 과정을 스쳐지나가는 나 같은 관광객들은 한없이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현지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나마스떼를 말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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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런 트레킹은 초행인 만큼 와보니 안 챙겨서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니지만 진짜 위스키 두 병 사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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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현지식이 별 거 없다는 말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어제 저녁 우연히 시키게 된(오늘 일정부터는 신성한 지역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종류가 제한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닭고기 베이스의 달밧과 모모는 나와 K의 쇄국입맛을 전면개항하는 네팔발 포탄과도 같았다. 달밧파워 트웬티포아워만 있으면 ABC도 끄떡없다. 오늘 점심도 달밧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