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결 블로그 ✍️ 💻 📷 🍻

ABC 트레킹 3 : 시누와

  1. 산행은 고되다. 그래도 할 만한 수준이다. 가장 무거운 짐을 든 비커스가 항상 앞장을 서고 그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짐을 든 내가 중간에, 제일 가벼운 배낭을 멨지만 그만큼 제일 귀여운 K가 후방에 선다. 가장 힘들어 하는 K를 챙기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몫이다. 이제는 입모양만 봐도 얼마나 힘든지 알아차릴 수 있다. 앙 다물었지만 입꼬리가 수평을 유지한다면 힘이 날 만한 말을 던질 타이밍이다. 아직까진 정말 잘 가고 있다. 기특하다.

  2. 거머리에 물렸다. 복장이나 동선을 고려했을 때 노출된 순간은 찰나인데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셈이다. 침대에 엎드려 글을 쓰던 나를 보고 먼저 소스라치게 놀란 건 K, 피범벅(은 과장이 아니고 진짜였다.)이 된 발을 돌아보고 뒤늦게 놀란 것은 나였다. 아마도 내 오른발등을 뜯은 것으로 추정되는 거머리는 숙소 천장에서 대롱대롱거리고 있었다. 침착하게 발을 닦고 반창고를 붙인 뒤 천장의 녀석을 사로잡았다. 거머리에 물린 소감을 요약하면, 정말 쥐도새도 모르게 물리고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난다는 것.

  3. ABC까지 가는 트레킹 코스는, 비커스에 의하면, 하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 현지인들 사이에선 코리안 코스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큰 거점에는 “1. 한국라면 2. 김치찌개 3. 백숙 4. 김치”라고 쓰여진 간판을 여럿 볼 수 있으며 롯지가 아닌 쉼터 대부분에서도 한국인 등산객들이 혹할 만한 메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코스에 존재하는 모든 롯지와 쉼터는 비단 관광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삶을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시내를 한 번 나갔다 오는 것만 해도 며칠이 걸리는 여정이다. 휴식없이 생필품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70kg 무게의 가스통을 짊어진 당나귀도, 말도, 소도 휴식할 곳이 필요하다. 모든 공사 자재를 등에 지고 머리로 그 무게를 지탱해가며 가는 이들의 무리를 볼 때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이 신성한 삶의 과정을 스쳐지나가는 나 같은 관광객들은 한없이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현지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나마스떼를 말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당연히 이런 트레킹은 초행인 만큼 와보니 안 챙겨서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니지만 진짜 위스키 두 병 사올 걸.

  5. 네팔 현지식이 별 거 없다는 말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어제 저녁 우연히 시키게 된(오늘 일정부터는 신성한 지역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종류가 제한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닭고기 베이스의 달밧과 모모는 나와 K의 쇄국입맛을 전면개항하는 네팔발 포탄과도 같았다. 달밧파워 트웬티포아워만 있으면 ABC도 끄떡없다. 오늘 점심도 달밧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