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트레킹 2 : 멀미
뽀시래기 시절부터 나는 멀미 대장이었다. 차만 타면 두통을 동반한 어지러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먹고 언젠가부터 나는 아예 멀미를 하지 않는 자가 되었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아침마다 등교길에 아버지가 태워주시는 차에 타서? 대학교 때 수시로 서울을 들락날락하느라 고속버스를 많이 타서? 모르겠다.
여튼 그 당시 내 멀미를 다스리는 거의 유일한 길은 어딘가에 머리를 기대 눕는 것이었다. 쿠션이니 팔이니 하는 것들이 그 기댐의 대상으로서 동원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어머니의 허벅지였다. 유홍준이 불러온 국내 답사 신드롬(이라고 쓰고 뽕이라고 읽는다.)의 직격타를 맞은 아버지 덕분에 내 가족은 그 작고 빨간 르망을 타고 전국을 누볐는데 멀미가 올 때면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는 어머니를 보채서 뒷좌석에 앉게 하고 허벅지에 누워 머리를 기댔다. 멀미가 가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포카라 숙소에서 지프를 타고 시와이로 출발한 것은 오전 10시 30분경. 튼튼한 지프는 시내를 벗어나지마자 차도라기보다는 그냥 풀이 나지 않은 곳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K는 내 허벅지 위로 몸을 뉘었다. 더 이상 멀미를 하지 않는 내가, 멀미가 온 누군가에게 허벅지를 내어주는 그 광경은 사뭇 뭉클하고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여행이란 이렇게 아주 낯선 순간에 예기치 않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