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결 블로그 ✍️ 💻 📷 🍻

ABC 트레킹 1 : 포카라로 가는 길

배기지 클레임을 마치고 카트만두 국제공항을 나섰다. 국제공항이라고는 하지만 규모는 6년 전에 가본 필라델피아 공항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작을 것이다. 공항을 나서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낯익은 것이라곤 하나 없는 어떤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열악하다한들 공항이란 여행객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곳이 아니겠나.

수십 명의 택시 기사들이 호객 행위를 해왔다. 니하오, 웨얼 투, 나마스떼, 거기에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말들이 후덥지근한 공기로 흩어졌다. 전혀 능숙하지 못하게 그들의 자본주의적 호의를 물리치고 유심을 사러 갔다. 네팔 관광청(으로 추정되었다.)의 자원봉사 뱃지가 눈에 띄는 남성이 제법 유창한 영어로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유심 구매 과정을 거들었다. 과정 막바지에는 포카라에 아는 포터가 있는데 자격을 인증 받은 포터와 그렇지 않은 포터를 두는 것은 천지 차이다 같은, 택시 기사들의 호의와 대동소이한 그 선심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예약을 마쳤다는 말과 함께 정중히 거절하고 캐리어를 끌고 약 200m 가량 떨어진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했다.

국내선 터미널의 혼잡은 국제선의 그것을 상회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짐 검사를 마치고(과연 무언가를 체크하기는 하는 것일까?) 미리 예약한 표를 찾으러 갔다. 16시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곧 출발하는 14시 비행기를 타겠냐고 묻는다. 몇 시냐고 반문했더니 13시 50분이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궁금했지만 직원이 그러는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캐리어를 넘기고 터미널로 빠르게 밀려들어갔다. 2009년에 가본 공주 시외버스터미널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보딩이 시작되었고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없이 표를 주고 버스에 올랐다. 잠시 대기하는 사이 유니폼을 입은 누군가가 어떤 승객에게 무언가를 확인받는 것을 목격했다. 앞선 질문이 풀렸다. 어쨌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정상적인 프로세스가 진행 중인 것이다.

한 40-5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작은 비행기에 올랐다. 내 앞자리에 앉은 승객은 아까 국내선 터미널에서 에피폰 하드케이스를 맡긴 락커였다. 30여 분 뒤 비행기가 착륙했다. 포카라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선 어떤 식으로 배기지 클레임을 하는 것일까? 카트만두 국내선 터미널에서 받은 짐 표찰을 내면 그에 맞는 가방을 직접 건네주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저 잘난 나라들의 공항에서처럼 가방을 확인하고 서로 헷갈리는 둥하는 시행착오란 있을 수 없었다. 쫀쫀하게 연결된 아날로그는 어딘가 결함이 있는 디지털보다 좋은 UX임이 틀림없다.

K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숙박하는 곳에서 보내 준 기사이리라. 캐리어 하나는 차 지붕 위에 올리고(하지만 그 어떤 고정 장치도 하지 않았다.) 하나는 조수석에 넣고 우리는 뒷좌석에 앉았다. 숙소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사장님이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짐을 풀었다. 실링 팬이 달린 정갈한 숙소는 지옥의 묵시록 첫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세트였다. 포카라가 지옥 같다는 뜻은 아니다. 고대하던 샤워를 마치고 간단하게 트레킹 OT를 들은 뒤 미처 준비하지 못한 판초를 사러 레이크사이드 시내(?)를 다녀왔다. (레이크사이드 시내라는 곳에 대한 감상은 다음으로 미룬다. 어차피 포카라에서 있을 날이 조금 더 있다.)

저녁으로는 숙소 1층에 딸린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었다.어차피 네팔의 현지식이라는 게 별 게 없다는 점, 산에 올라가면 그 별 게 없는 현지식을 주구장창 먹게 될 거라는 점 때문에 현지식을 그렇게 권하지 않던 사장님의 말을 잘 들은 뒤 결정한 메뉴였다. 에베레스트 맥주라는 것도 하나 시켜서 먹었다. 밍밍한 것이 한국의 라거와 비슷했다. 잠시 정신을 놓으면 어디 가평 MT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방으로 올라와서는 방콕에서 사온 위스키를 조금 곁들였다. 금방 잠에 들었다.

6시에 일어나 할 일이 없어 펜을 들었다. 따로 준비해온 종이가 없어 각종 티켓/이면지 뒤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더욱 할 일이 없어 펜으로 적은 것을 다시 디지털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