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에어팟
나는 애플을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교 시절 친구를 통해 처음 접했던 아이팟을 제외하면 나는 그 이후에 나온 모든 애플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에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진 못했다. 이는 유난히도 “빠”가 많은 무언가를 회피하는 나의 본능적 반골 성향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뭐 솔직히 말해서 애플의 프로덕트가 그렇게 뛰어난가 자문했을 때 자신있게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어차피 매스의 힘은 구글과 마소가 가져가고 있는 것 아니겠나 하는 고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서도…
하지만 3자가 봤을 때 나는 비교적 전형적인 앱등이다. 개발 머신으로는 5년째 맥북을 고집하고 있고 전화기도 아이폰을 사용한 지 4년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변호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휴대성이 있는 장비 중 개발 머신으로 맥북보다 좋은(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면 개발 친화적인 모던 OS로 OS X보다 좋은) 제품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아이폰은 운이 좋게도 두 차례나 내 현금을 지불해가며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고른 것에 불과하다. 결정적으로 나는 앱등이의 필수 조건인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아이클라우드도 사용하지 않고 사파리도 쓰지 않는다. 어쩌다보니 맥북과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을뿐 내 취향이나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니다.
에어팟이라는 기괴한 물건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의 반응도, 이 애플에 대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은근히 내리깔보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앱등이의 물건이다. 나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을 것이다. 길거리에 너무 흔하게 보인다. 멋대가리없다. 몰개성 몰취향의 극치다. 계속 비아냥거리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겠지만 지난 주 마음씨가 따뜻한 K로부터 난데없이 에어팟을 선물 받으면서 나의 이 냉소적 태도는 조금 방향을 틀었다. 에어팟은 흠잡을 곳이 거의 없는 제품이다. 다른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해보지 않은 나로서 다소 성급한 결론일 수 있으므로 자신있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추천을 할 수는 있겠다.
(여전히 에어팟이라고 특정해서 말하는 건 부담스러우니)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얽매여왔던 유선 이어폰을 사용할 때의 제스처에서 거의 완벽하게 해방된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에어팟을 꼽으면 손과 팔이 자유롭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다. 요리와 설거지,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도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다. 중요한 순간에 양손에 쓰레기 봉투를 들고도 야구 중계를 (귀로는)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원래 이어폰을 꼽고 운동하는 편이 아니라 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히 그 때도 무척이나 편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동 중에 음악을 나눠듣는 것에도 불편함이 없다. 아직 잘 모르겠는 것은 다음 곡 재생, 곡 처음 또는 이전 곡으로 돌아가기, 볼륨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다. 물론 구글에 검색하면 나올 것을 알지만 이렇게 글을 올리면 또 지나가던 앱등이가 도움을 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용팁도 알려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나 애플 사용자에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각설하면, 누구 보고 꼭 사서 쓰라는 이야기는 하기 어렵지만 누가 준다고 하면 꼭 받아서 쓰라고 하고 싶다. 누가 준다는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