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결 블로그 ✍️ 💻 📷 🍻

물통

나는 오늘 휴지통만큼이나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별로 발전이 없는 물건인 물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물통이라는 물건이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인지, 우리가 눈을 감고 물통이라고 떠올렸을 때 머리를 스치는 두 가지의 물통(하나는 스테인레스 바디에 얇고 휘어지는 고무/플라스틱 같은 소재의 뚜껑이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투명한 플라스틱 바디에 대개 연두색 또는 파란색의 여닫이 뚜껑이 달렸으며 높은 확률로 빛바랜 소주 광고 포스터가 프린트되어 있는, 여러분이 모두 알고 있는 바로 그것들)이란 얼마나 지루하고 창의적이지 않는 오브제인지, 그 와중에 우연히 찾은 하이마트에서 발견한 물통이 얼마나 여러 면에서 우월한 녀석인지를 설명하려고 오늘 아침부터 글의 개요를 틈틈이 생각했는지 독자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소중한 사람 K가 고심 끝에 물통을 해체해버렸다. 이렇게 여러모로 우월한 물통은 우월한 아귀힘을 가진 자에 의해 파.괴.되었다. 심지어 재고도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희귀템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별로 쓸 이야기가 없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