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초
자타가 공인하는 예민한 후각을 가진 어머니를 둔 덕인지 나는 섬세하고 민감한 후각을 가지진 못했지만 향을 제법 음미하고 감상하길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왔다. 이 숫자라는 게 그 자체만으로 나의 취향을 입증하는 것이라기보단 좋은 향에의 멀고도 비싼 여정의 방증으로 이해해도 되겠지만 그 여정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자세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것이다. 얼마 전에 구매한 전신거울 근처에 놓인 향수병이 8개다. 거실에는 디퓨저가, 침실에는 룸 스프레이가, 화장실에는 별도의 방향제가 있다. 세탁을 할 때는 섬유유연제를, 왠지 프로 살림꾼이 보면 등짝 스매시를 한 대 날릴 것 같은, 정도의 양을 넣어야 안심이 된다. 섬유 탈취제는 아무렇게 막 쓰는 것과 데님 전용 제품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좋은 냄새와 분위기를 내기 위해 향과 향초를 모두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향이 없는 사람으로 곧잘 인식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체취든, 별도로 얹은 향이든 내 몸에는 냄새라는 것이 잘 붙어있질 않는다. 향수를 뿌리고 바로 외출해서 만난 사람이 향수를 전혀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 사람들의 후각을 탓했지만 비슷한 일화가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향수를 너무 진하게 뿌린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긴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의 후각도 의심하고 있다.)
지난 화요일 집에 놀러온 두 명의 친구들이 각각 하나의 향초를 사다주었다. 일요일에는 소중한 사람 K가 마지막 명상 수업을 다녀오면서 받은 향을 선물해주었다. 집구석이 좁은 만큼 방향 제품의 효율이 높다. 당분간 좋은 향이 넉넉하게 풍기는 집에서 생활할 수 있어서 기쁘다.
이 주의 선물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내 집에 오지 않은 사람은 많고 그들이 줄 수 있는 선물도 무한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