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 공유기 4
곁에 두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무리라는 것은 때에 따라 이런 저런 이유로 부침이 있기 마련이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형성된 인맥은 그 플럭추에이션의 진폭이 비교적 적다는 특징을 가진다.
바로 여기 B 라는 사람이 있다. 2016 년 말 사당의 술자리에서 본 것을 시작으로, 이태원, 대림, 문래, 합정 등지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는 여러 재능을 가졌으나 보통 여러 재능을 가진 사람이 그렇듯 여러 재능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지만 또 여러 재능을 가졌기에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든 맛있는 술과 함께 환담을 나누기 좋은 사람이다. 사당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날 B 를 초대했다. 여느 때와 같이 여러모로 가득찬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날 그는 새 집에 어울리는 선물을 하나 보내주겠다고 했다. 역시 여러 재능을 가진 사람다운 따뜻함이었다.
그의 선물이 회사로 도착한 것은 지난 금요일의 일이었다. 박스를 뜯자 본인의 성과 잘 어울리는, 새하얀 샤오미의 공유기가 보였다. 안 그래도 집에 따로 마련할 만한 공유기가 없던 내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물건이었다. 문득 박스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강력한 신호. 하얀 성을 가진 그의 이름과 획 하나 차이가 나는 그 강력한 신호를 보면서 학부 때 들은 신호 및 시스템 수업에서 C 언저리의 학점을 받았던 기억 등이 스쳐지나갔더랬다. 각설하고, 샤오미 무선 공유기의 초기 셋업 UI 는 무척 깔끔하고 심리스했는데 와이파이 네트워크의 이름을 정하는 단계에서 “계산동 백선호”라고 타이핑을 했다가 쓱싹쓱싹 지우고 다른 이름을 적고 설정을 완료했다.
비록 그의 이름은 네트워크에 오르지 않았지만 백색의 강력한 신호를 가진 샤오미 공유기는 존재만으로 그의 강력함을 증명하는 근거다. 다시 정한 와이파이 네트워크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소정의 선물을 사들고 사당동 저의 거처를 방문해주세요.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덤으로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