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코 마리아 자켓
와코 마리아는 그 무시무시한 가격대와는 사뭇 안 어울리는 느낌으로, 두 명의 일본 축구선수 출신의 디렉터가 만든 브랜드다. 사실 이 브랜드에 대해 아는 것은 이 정도밖에 없고 상의 뒷판에 달린 특유의 예쁜 자수를 좋아했다. 여태까지는 그냥 좋아만 했다. 왜냐면 가격이 비싸거나 가격이 전혀 안 싸거나 가격이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는 일본에서 직접 구매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카드를 긁기 전에 한 번은 멈칫하게 되는 그런 브랜드. 와코 마리아는 내게 그런 브랜드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하루 전날, 저녁 약속 전에 시간이 남아 H 와 압구정 갤러리아를 들렀다. 훠이훠이 둘러보다가 4 층에 올라갔다. 우측통행의 나라인답게 에스컬레이터를 나와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와코 마리아의 그 영롱한 자수가 눈에 딱 띄었다. 형에게 곧바로 문의를 넣었고 현재 팝업처럼 들어온 것으로 안다는 대답을 받았다. 와코 마리아가 진열된 매대로 갔다. 우와 예쁘네 하면서 가격표를 슬쩍 까보았고 갑자기 현타가 찾아온 나는 금방 자리를 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와코 마리아는 그런 브랜드였다.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H 와 가든파이브에 들렀다. 원래는 이마트에 가서 먹을 만한 것을 사들고 집에서 와인과 함께 먹을 계획이었으나 의외로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현대아웃렛에서 밥도 먹고 (나는 처음 가보는 거라) 매장 구경도 좀 해보기로 했다. 1 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바로 전면의 매장에 들렀다. 원래대로라면 가격이 꽤나 나갈 브랜드의 이월 상품 가격을 퍅퍅 꺾어파는 곳이었다. 그런 곳이 보통 그렇지만 남성복은 한 켠에 작게 모여 있었다.
옷 몇 벌을 스쳐지나갔는데 천국동경이라는 와코 마리아의 그 아이코닉한 라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옷을 꺼내어 뒷면을 봤다. 강려크한 포스의 독수리 자수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격을 봤다. 당연히 이월상품 세일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전날 갤러리아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레벨의 가격대였다. 입어봤다. 내 사이즈다. 한 번 고민하고 두 번 고민하고 내려놓았다가 세 번 고민하고 결제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현금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통장 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