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기2: 햄튼 코트 팰리스
이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의 발로지만, 런던이라는 도시의 주요 도심들을 며칠 동안 많은 시간 투자해 다니다보면 큰 맥락을 몇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으며 이미 한 번 그 무형의 유형 시스템이 자리잡은 이상 어디를 가든 어색함과 신선함 - 가히 내가 해외 여행의 최고 가치라고 꼽을 수 있는 그 감정들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이는 비단 런던이라는 도시의 문제만은 아니다. 뉴욕을 가든, 도쿄를 가든, 서울을 가든 어느 도시나 몇 날 며칠 지내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면 이런 느낌은 불가피하다. 그 변화무쌍하고 기이하기가 이를 데 없는 풍경을 가진 아이슬란드 역시 3 박 4 일 정도의 일정으로 여행을 하면 풍경이 금방 눈에 익는다. 아마도 스페이스엑스 따위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화성이나 달로 여행을 간다고 해도 아마 이 현상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지로서 런던이라는 도시의 가치를 폄하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합쳐 10 일이 넘는 런던 일정에서 들렀던 갤러리와 박물관, 버스와 지하철, 여러 마켓의 수많은 음식점과 가게들까지 나의 흥미를 끌지 않은 곳은 없었다. 단지, 내가 굳이 시간을 내어 특정한 경험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런던 도심에서는 다소 거리가 떨어진 곳이며 우리가 보통 런던이라는 도시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곳일 뿐이다. 런던의 중심부에서 서남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햄튼 코트 팰리스가 바로 그 곳이다.
짧지 않은 여행 일정의 대단원을 내리는 마지막 날에서야 햄튼 코트 팰리스를 가기로 결정했다. 웨스트브롬톤 근처의 숙소에 모든 짐을 맡겨두고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클랩햄 정션에 도착, 햄튼 코트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고 한산한 열차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시내를 벗어났다. 공항을 오가는 길을 제외하고 웬만해서는 존 1, 2 를 벗어나지 않았었기 때문일까? 가을 햇살이 떨어지는 그 런던 근교의 풍경을 잊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 말 그대로 끝자락이었기에 하나라도 좀 더 눈에 담아가자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역에서 내려 테임즈 강을 건너는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니 바로 햄튼 코트 팰리스 입구가 나타났다. 성인이라면 20.90 파운드가 입장료. 처음엔 입장료가 싸지 않다고 느껴졌으나 천만의 말씀, 들어갈 때 나갈 때 마음이 다르다고 햄튼 코트 팰리스를 제대로, 여유를 가지고 다녀온다면 절대로 입장료가 비싸다는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정원 문화가 유서가 깊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궁 내부의 여러 공간들도 우와 소리가 나오지만 백미는 역시 정원이다. 운이 좋게도 런던을 떠나는 날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해가 쨍쨍했다. 그 햇살의 따스함과 적당히 청량감이 감도는 공기의 온도,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완벽하게 관리된 정원의 풍경과 어우러지는데 그 안락한 평화를 맛보는 기분은 이루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좋았다. 사진은 각자 구글링을 해보시길.
정오가 넘어 적당한 때에 햄튼 코트 팰리스를 빠져나왔다. 다시 언더그라운드를 이용해서 웨스트브롬톤의 숙소에 들러 짐을 찾아,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공식적으로, 런던-레이캬비크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