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 슬라이드
여차저차 묘하게 바쁜 한 주였다. 특히 주말에는 전시를 두 차례나 보러가게 되었는데 토요일의 전시는 작가를 직접 만나 낮에서부터 짬뽕과 탕수육과 - 우리 위대한 작가님 I 는 이것이 나의 늦은 생일상이라고 우겼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들고 뭐부터 먹어야 하냐는, 아마도 한국식 중화요리 역사상 처음으로 나온 질문을 던지고 말았는데 이렇게 글로 옮기니까 별로 재미가 없는 줄은 또 몰랐네. - 이과두주 몇 병을 격파했다. 사실 안 지 그렇게 오래 된 사람도 아니고 대단히 소통이 잦은 편이었던 것도 아니며 관심사나 삶의 배경의 교집합이 큰 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만날 때마다 여러모로 무척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는 나만의 생각일 수 있으나 그 친구 역시 나와 비슷하게 느낀다는 가정하에, 관계에는 언제나 이상적인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그 친구는 서로 꽤나 적당하고 안정적인 거리감을 찾았다고 생각하며…
일요일에는 지인과 함께 그의 지인이라는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갔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단 한 번의 도슨트 프로그램, 오디오 가이드를 써보지 않은 나에게 작가가 직접 도슨트를 하는 전시를 보기란 흔치 않은 기회였다. 약 2 시간 가량 작품의 소개를 듣고 작가와 질답의 형태로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작품에 대한 자유로운 멘트를 남기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 안의 예술 바이브가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런 기분은 허세라든지, 개똥 같은 단어로 대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의 만족이 아닌 결과물로서 이 주의 소비는 단연 이직할 회사로 보낸 나의 자기 소개 슬라이드다. 도대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알 수가 없는 이 슬라이드에, 나는 정말이지 솔직한 내 이야기를 담아냈다. 굳이 설치해서 사용하라던 모 회사의 글씨체를 다운받아서 키노트에 끄적이고 PDF 와 PPTX 파일로 익스포트한 뒤 메일로 보내기까지 쓴 내 일요일 밤의 30 여 분이야말로 단연 이 주의 소비가 낳은 최고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