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kcal
비극의 시작은 토요일 오전, 전날부터 이어진 정의당 서울시당 청년학생위원회 신입당원교육의 술자리가 끝나고 사당의 집으로 돌아올 때부터였다. 놀랍게도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는 순식간에 급격한 분노가 올라오지만 마찬가지로 아주 순식간에 그냥 걸어야지하며 체념의 감정으로 계단을 오르게 된다. 술기운이 조금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 절망은 토요일 오후에 현실이 되고 말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외출을 하려던 나는 아예 엘리베이터의 층 표시등이 꺼져 있는 것을 봤고 조작버튼 근처에 붙어 있는 수리 안내문을 보게 되었다. 설상가상인 것은 부품 조달 문제로 이 상태가 10 월 31 일까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잘 나갔다가 밤에 술 잔뜩 먹고 잘 돌아왔다.
오늘은 낮에 약속을 마치고 저녁에 연희동에 가서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식량을 조금 배급을 받아왔다. 합치면 한 4kg 은 될 것 같은 백미와 현미를 등에 지고 한 손에는 반찬 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오르니 유난히 힘들었다. 아마도 술기운이 부재한 탓도 있겠지만…
그냥 구글에서 쓱쓱 검색해 팩트체크가 안 된 정보긴 하지만 한 층을 오르면 7kcal 가 소모된다고 한다. 내 방은 9 층에 있다. 계단을 오르는 것과 내려가는 것을 대충 같은 7kcal 라고 퉁치면 토요일 오전, 오후, 밤, 일요일 오후, 저녁까지 5 번, 주말 사이에 나는 약 315kcal 가량과 무릎 연골의 일부를 소비했다. 소비의 대가는 역시 백미와 현미, 반찬 몇 가지와 집에 도착해서 내뱉은 한숨 한 번 정도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