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동물원
이십대 중반을 지나며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살 공간에 절대로 두지 않을 것으로 십자가와 동물을 꼽을 정도로 극단적인 태도를 취했던 나는 이제 매일 말도 안 되게 소중하거나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생명체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지극히 원리주의적인 환원론자로서 넓은 의미의 생태계, 좁은 의미로는 주변의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생명체의 존재를 분석 가능한 대상 그 이상으로는 이해하지 않던(하지만 소위 파블로프로 대변되는 행동주의로 빠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는 그 존재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두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 전부에 나의 감정과 관심을 쏟고 있다. 혹자는 그런 마음을 사람한테 투자해보라는 핀잔을 주지만 후… 아직 그러기에 나의 인류애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나의 부족한 공감 능력이 이런 사회에 영향을 준 결과인지 이 공감 능력이 이 망한 사회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좁디 좁은 케이지에서 평생을 생활할 동물들에 적지 않은 부채의식을 느끼며 동물원을 찾은 것은 지난 토요일의 일이다. 원래는 근처 미술관을 가려던 것이었지만 기왕 과천까지 나갔고 날씨도 쏠쏠했기 때문에 코끼리 열차를 타고 내린 입구에서 계획을 바꿨다. 선명한 적색빛의 홍학부터 연신 몸에 진흙을 뿌려대던 코끼리와 코뿔소, 늦더위에 축 쳐져 잠을 자던 치타, 재규어, 사자들, 항상 표현할 수 없이 귀여운 수달과 원숭이, 래서 팬더 등을 보면서 무척 귀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안쓰러움을 감출 수 없는 애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 모든 애매함을 날려버린 시간이 있었다. 입구에서 지도를 봤을 때는 전혀 볼 계획이 없었지만 지나가는 길에 미어캣 케이지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지난 날 디즈니 만화동산과 성당 중 단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전자를 선호했던 나의 본능이 케이지로 발걸음을 이끌었다. 역시 이 호기심 가득차 보이는 녀석들을 보는 것엔 실패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무리 어딘가에서 정말 몸 크기가 내 검지와 중지를 합친 것 정도가 되는 미어캣 새끼 두 마리를 보게 되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부모로 추정되는 친구가 목덜미를 물어서 움직여야 할 만큼 작고 연약한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으으으으 정말 형용할 수 없는 그 느낌이 마음에 흘러넘쳐 강을 이루고 바다가 되어 내가 바단지 바다가 난지 분간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러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느닷없이 익명의 꼬마가 소리를 질러서 정신을 차리고 자리를 총총 떴다.
미어캣을 키우려면 드넓은 평야를 소유한 대지주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노동하고 당신보다 돈을 많이 벌어 언젠가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어캣의 왕으로 군림하리라. 무슨 말인지 사진만 보면 잘 모르겠다고? 검색해서 꼭 봐라 미어캣 아가 사진 꼭 봐라…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성인 기준 입장료가 9 천원이고 동물원 입구를 드나드는 코끼리 열차는 필수는 아니지만 타고 가면 쾌적하기가 그지없으며 편도로 1 천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