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의 고객 서비스
지난 수요일 오전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수술 및 회복을 위해 선릉역 인근 서울땡큐이비인후과에 입원을 했다. 입원 이튿날 저녁까지만 해도 왠지 모르게 이런저런 할 일이 많아서 착착 처리를 하다가 밤이 되면서 모든 의지를 상실, 그냥 전화기나 이리저리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문득 첫 화면에 사용하지 않는 앱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을 내어 정리를 시작했다. 스스로도 고개를 갸웃했던 순간은 빙글 같은 (수식어 생략…) 앱이 설치가 되어 있다는 걸 발견한 때였는데 오늘에서야 빙글 같은 (수식어 생략…) 앱이 왜 내 전화기에 남아 있었는지 생각이 났다.
때는 2015년 11월, 존경하는(웃음) 이승환 사장님의 위대한(웃음)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다. 이미 그보다 한참 이전에, 화제가 되었을 무렵에는 아마 “한국형 컨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같은 꼭지를 달고 있던 빙글에 가입하여 간간이 푸시를 받아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메일의 기록을 보면 11월 12일 저녁 9시 50분 무렵이라고 하니 야근을(또는 회사 근처 어딘가에서 술자리를) 마치고 이제는 제법 쌀쌀해진 초겨울 공기를 맡으며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어폰으로 푸시 알림음이 들렸다. 전화기를 봤다. 빙글의 푸시였다.
2017년에야 최고의 시즌을 보낸 뒤 이리저리 구설수에 휘말리고 이적설이 모락모락 나오는 호날두지만 2년 전만 해도 그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적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빙글의 푸시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호날두가 맨유로 돌아옵니다.”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다는 것만해도 엄청난 소식인데 이적팀이 맨유라는 것은 세계축구계가 뒤집힐 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하고 손에 힘이 다 풀렸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잽싸게 푸시를 눌렀다. 그리고 내 눈에 나타난 화면은, 약 10x10의 표와 그 안에 정신없이 널부러진 알파벳들과 “가장 먼저 보이는 선수가 응원하는 팀으로 이적을 한다!?” 같은, 연말연시가 되면 페이스북에서 자주 보이는 "가장 먼저 보이는 세 단어가 당신의 201X다!?"와 대동소이한 포맷의 컨텐츠였다. 솔직히 이러면 빡이 쳐 안 쳐. 나는 곧바로 빙글 앱에서 회원 탈퇴 기능을 찾았지만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앱 안을 돌아다녀도 해당 기능을 찾을 수 없었다. 바로 고객센터를 통해 메일을 보냈다. 방금 너무 말도 안 되는 낚시 푸시를 보고 기분이 상해 탈퇴를 하려고 하니 방법을 알려달라고.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쯤 빙글의 지원팀에서 답장이 왔다. 사진에 보이는 것이 그들의 답장이었다.
내가 햇수로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빙글 앱을 지우지 않고 있던 이유는, 당시 내가 받은 저 메일을 내 좁은 소셜 채널에라도 꼭 공개하고 나서 지우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없어져버린 원 오브 마이 침샘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 포스트를 작성했고 몇 분 뒤 이 개 (수식어 생략…) 같은 서비스에서 탈퇴하고 앱을 삭제할 예정이다. 아니 사실은 좀 심심해서 스팀에서 게임을 하나 샀는데 다운 받는 시간 동안 할 일이 없었을 뿐이다.
여튼 빙글을 탈퇴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고 하니 여러분도 어서 탈퇴하시고 좀더 나은 헬조선에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