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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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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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카데미 시상식의 뉴스를 받아보면서 H와 나눈 대화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아카데미가 대단히 어메리카 중심적이라는 것과 (지금) 헐리우드 계열의 사람들의 반 트럼프 정서를 고려하면 충분히 문라이트에 승산이 있다고는 보지만… 뭐 이러든 저러든 내 삶이랑 별로 상관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라라랜드도 충분히 작품상을 받을 만한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련의 해프닝 끝에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이지만은 아닌 바람이 충족된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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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는 오래 전부터 영화에 대해 대단히 차별적인, 내가 위에서 말한 구절을 그대로 가져오면, "대단히 어메리카 중심적"인 영화제다.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화들의 내용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젠더, 인종, 종교 이슈 등에 있어 지극히 WASP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은 뭐 다른 여러 자료를 들고 와서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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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 속에서 마이너의 마이너를 다룬 문라이트가 오스카 작품상을 탄 것은 대단한 의미다. 작금의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시티 오브 스타스를 아름답게 노래하는 두 부르주아 백인 남녀의 로맨스보다는 마이너의 마이너들의 삶을(이 이상의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렵다는 것은, 영화를 한 번 보고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감각적으로 담아낸 한 편의 드라마가 "보수적 권위"에 의해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으로서 선정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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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이런 지적이 등장한다. 팍스 뉴스의 터커 칼슨은 “문라이트는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해야만 했지. 왜냐면 너네들도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다 알잖아. 그리고 그게 바로 헐리우드의 문제라고.” 또는 "정치적인 냄새가 나기 시작한 순간 예술의 의미는 퇴색된다"며 문라이트의 수상에 대해 "거만하고 젠체하며 촌스럽다"고 평가했다. 이 짧은 이야기에 예술에 대한 그 놈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고리타분한 생각과 문라이트의 내용을 정치적 올바름과 연관 짓는, 마이너들의 마이너함을 특정 기준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하는 역시나 악취가 풍기는 꼰대의 자세가 가득 담겨 있다는 사실을 굳이 풀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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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문라이트는 시대적 함의를 담아낸 작품인 것에 앞서 그냥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문라이트 감상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야 이 반란군놈의 새끼야 빨리 극장으로 뛰어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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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