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데에 관한 일화
이건 어제 있었던 실화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화장실에 갔다. 회사 화장실은 내 회사 사람들만 쓰는 것은 아니고 같은 층 사람들 전체가 공용으로 쓰는 곳이라 나름 소변기도 두 개 있고 세면대도 두 개 있으며 응가하는 곳도 두 개가 있다.
두 개의 응가하는 곳은 나름 차이가 있다. 더 깊숙한 곳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좀 더 문과 가까운 곳에는 아쉽게도 비데가 없다. 나랑 좀 가까운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비데 찬양론자다. 겨울철에도 따뜻한 변기에 앉을 수 있고(하지만 다른 사람의 온기로 따뜻한 변기는 절대 사양이다.) 화장지를 몇 번이나 접어가며 닦을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확실히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지 않나.
내가 화장실에 갔을 때는, 아무도 그곳에 없었다. 오늘도 비데를 쓸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비데칸에 딱 들어갔다. 하지만 비데칸의 화장지가 모두 심만 남아 있는 슬픈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고 아쉬운대로 비데가 없는 칸에서 볼일을 보기로 했다.
불과 몇 초 뒤 화장실 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신원을 알 수 없는 그는 화장실로 들어와 내 옆칸이자 비데가 있는 칸이자 화장지가 없는 그 칸으로 들어갔다. 뭔가 언질이라도 주어야 하나 고민하던 사이 그가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차분히 그와 페이스를 맞추면서 화장지를 좀 뜯어서 줄 수 있겠냐는 그의 부탁이 들어오면 당황하지 않고, 기꺼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놀라운 것은, 그는 내게 부탁도 하지 않았고, 뭔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비데의 세정 기능을 사용하고는 그대로 옷을 매만지더니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 날 화장실에 남은 건 도저히 작금의 사태를 이해할 수 없는 한 사람의 빡빡이와 알 수 없는 자가 남기고 간 비데 위의 온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