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노동
올해 초에 모처에서 학술 모임? 학술 동아리? 비슷한 단체의 발족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행사에서는 원래 모임의 루틴인 토론과 발제를 곁들였는데 그 중 한 토론의 주제가 대안적인 식재료 생산, 유통, 소비 방법론에 관한 것이었다. 새 겨울이 오는 마당에 지난 겨울에 있었던 토론에서 오가던 이야기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실제로 식재료를 재배해서 판매까지 진행했던 분의 이야기, 로컬푸드와 관련된 이야기 등이 나왔던 것 같다. 대부분 처음 듣는 논의들이라 흥미롭게 들었다. 특히 식재료의 생산자가 직접 판매자가 되며 지역 커뮤니티가 그 생산과 유통, 소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로컬푸드라는 모델이 인상 깊었다.
섭외된 분들의 토론이 마무리되고 참석자 질문 시간이 왔다. 뭔가 듣는 자세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분께서 손을 들고 차례를 받더니 맹렬한 기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는 이랬다. 자기는 로컬푸드 및 토론에서 이야기한 대안적 시스템에 관심도 많고 지지도 많이 하는 편인데 평일에 일을 마치고 상점에 들르려니 일찍 닫아버리고 주말에는 영업 자체를 하지 않아서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 그러니 로컬푸드를 다루는 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장사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의 저돌적인 논리에 할말을 잃었다. 그런 편의성을 극대화한 모델이 그가 반대한다는 거대 유통점이고 그 불편함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다른 가치에 투자를 하는 것이 그가 지지하는 로컬푸드의 개념이 아닌가. 자기 모순을 정신 승리로 극복했을 정도로 영리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자기 모순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었으리라.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되도록이면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태원으로 맥주를 먹으러 갔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 분이 다시 떠올랐다. 글의 주제는 삶의 속도에 관한 것이지만 타인의 노동에 비인간적일 만큼 무관심한 우리들의 일상적 욕심에 대해 한 번 생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