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여행기 10 : 타이페이 야시장은 역시 라오허제 야시장
제목에 허세를 부렸다. 타이페이에서 고작 이틀 동안 고작 두 곳의 야시장만을 가본 사람이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규모가 가장 큰 야시장 중 하나라는 라오허제 야시장 정도는 가야 타이페이의 야시장에 가봤다고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지우펀에서 출발한 버스에서 정신없이 내린 나와 P는 라오허제 야시장의 정문(사실 문이라는 것이 거리의 양쪽에 있기 때문에 어디가 정문이고 어디가 정문이 아닌지 알 길은 없지만 내가 먼저 들어간 곳이 정문이라고 하는 게 역시 이기적인 블로거의 맘 아니겠나.)으로 들어섰다. 이미 입구의 분위기부터 전날에 갔던 닝샤 야시장과는 달랐다. 우선 사람들이 더 많았고 가게의 배열이나 점포들의 상태(?)도 더 그럴싸했으며 양갈래로 나뉘어진 통로로는 철저에 가깝게 우측 단방향 통행이 지켜지고 있었다. 이미 야시장의 경험이 한 번 있었던 우리는 재밌는 것이 없나 좀 둘러보다가 오전에 미리 사둔 맥주의 안주거리나 좀 사다가 먹자는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
먼저 달콤해보이는 수박 주스를 사서 목을 축였다. 편의점에서 파는 밀크티는 그렇게 달더니 거리에서 파는 수박 주스는 정말 수박 100%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달달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P가 여행 내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게 튀김을 발견해 사먹었다. 역시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하긴 했는데 좀 짜고 고소했다. 그냥 그것만 먹기보다는 다른 음식과 먹었더라면 더 괜찮았을 것이다. P가 친구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야겠다며 미제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불법으로 본따 만든 이어폰 선 정리 클립을 몇 개 골랐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피니와 퍼브의 오리너구리 캐릭터가 보이길래 나도 하나 집었다. 가판대의 가격표에는 5개에 얼마라고 적혀 있었는데 내가 뒤늦게 하나를 고르는 것을 본 아저씨가 같은 가격에 6개를 주었다. 큰 환대를 받았다며 기뻐했는데 다른 가게를 보니 원래 6개에 그 가격을 받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자본주의다.
야시장에서 직접 먹었던, 또는 호텔로 사들고 가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객관적으로 가장 옳았던 것은 망고 빙수였다. 생 망고가 아닌 냉동 망고의 맛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시장에서 아무렇게나 팔던, 심지어 상태가 그렇게까지 좋아보이지 않는 생 망고의 맛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말 바깥 더위를 금세 잊게 하는 청량한 망고 빙수를 먹으면서 보니 대만 현지인들은 거기에 푸딩 같은 것을 얹은 메뉴를 가장 많이 먹는 것 같던데 맛이 조금 궁금하기는 했으나 망고 빙수를 각 1개씩 처리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참았다.
각설하고, P는 기념품을 사고 약간 쇼핑에 자신이 붙었는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옷도 하나 골랐다. 참고로 강아지도 매우 좋아하고 여전히 잘 입고 다닌다고 한다. 오른쪽 길을 타고 시장 끝까지 갔다가 다시 왼쪽 길을 타고 처음 들어섰던 정문까지 오니 지우펀을 다녀온 여독이 몰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엄청 오래 술을 먹을 것도 아니요, 배가 그렇게 고픈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호텔로 사들고 갈 음식을 한정지을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송이 버섯 구이와 멧돼지 그림이 그려져 있던 가판대의 꼬치(는 나중에 먹어보니 그냥 평범한 닭꼬치로 밝혀졌다.), 그리고 사탕수수 주스를 샀다. 택시를 탔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구글 맵스에서 리젠트 타이페이 호텔을 검색해 기사에게 알려주었다.
방에 도착해 피곤과 땀에 절은 몸을 청결하게 한 후 델리리움 트레멘스와 트라피스트와 닭꼬치로 드러난 꼬치와 고소한 버섯 구이를 먹었다. 역시 술은 언제나 옳다는 공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