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의 인상 깊은 글귀들
2011년 3월 11일 싸이월드 미니홈피 게시판에 올려두었던 글의 내용을 그대로 스크랩했다. 여전히, 수필집으로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는 대단히도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여태까지 읽었던 그 어떤 수필 모음보다 훌륭할 것이다.
코끼리를 쏘다 (1936)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돌아서다 나를 따라온 군중을 흘낏 보고 말았다. 막대한 인파였다. 적어도 2000명은 되고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길 양쪽을 다 막고 길게 늘어서 있었다. 빛깔 요란한 옷들 위로 길게 이어져 있는 노란 얼굴들의 물결이 보였다. 모두 코끼리한테 총을 쏠 것이라 확실히 믿고서 제법 흥이 나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마술사의 묘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날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술의 소총을 든 나는 잠시 봐줄 만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2000명의 의지가 나를 거역할 수 없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손에 소총을 들고 서 있는 그 순간 나는 백인의 동양 지배가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군중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백인인 나는 겉보기에 작품의 주인이었지만, 실은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바보 같은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백인이 폭군이 되면 폭력을 휘두르고 말고는 자기 마음이지만, 백인 나리라는 상투적 이미지에 들어맞는 가식적인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나 '원주민’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안달하고, 그래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원주민’이 예상하는 바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게 그의 지배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을 쓰고, 그의 얼굴은 가면에 맞춰져간다. 그러니 나는 코끼리를 쏴야 했다. 나는 소총 심부름을 시킬 때부터 이미 그럴 것이라 알린 셈이었다. 백인 나리는 백인 나리답게 행동해야 한다. 단호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확실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2000명이 졸졸 따라오는 가운데 총을 들고 여기까지 왔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슬그머니 물러나버린다ㅡ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중들이 날 비웃을 터였다. 나의 모든 생활은, 동양에 있는 모든 백인의 삶은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한 기나긴 투쟁이었다.
좌든 우든 나의 조국 (1940)
내가 전쟁을 지지하는 이유를 스스로 옹호해야 한다면,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히틀러에게 저항하느냐 아니면 굴복하느냐의 선택에선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주의자 입장에서 나는 저항하는 게 낫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나는 스페인에서 공화파가 저항하는 것, 중국이 일본에 저항하는 것 등등에 대하여 굴복하는 게 낫다는 주장 중에 말이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들이 내 행동의 감성적 바탕인 척하고 싶지 않다. 그날 밤 꿈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중산층에게 주입되어온 애국주의가 마침내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으며, 영국이 심각한 궁지에 빠지면 나로서는 애국주의에 반기를 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단, 여기서 오해는 없도록 하자. 애국주의는 보수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애국주의는 변하고 있되 신비롭게도 똑같이 느껴지는 무엇에 대한 헌신이다. (후략)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1943)
이런 것들이 나로서는 대단히 두렵다.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런 거짓들이, 아니면 그 비슷한 거짓들이 역사가 되어버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스페인내전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기록될까? 프랑코가 권좌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가 지목한 이들이 역사책을 쓸 것이고, 있지도 않았던 러시아 군대가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며, 학생들은 앞으로 그렇게 배우게 될 것이다. 반대로 파시즘이 결국 패배하여 꽤 가까운 미래에 스페인에서 모종의 민주 정부가 회복된다면, 그때는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까? 프랑코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이 남게 될까? 공화국 정부 쪽에서 가지고 있는 기록들까지 복구된다 하더라도, 전쟁에 관한 참된 역사가 씌어질 수 있을까?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공화국 정부 역시 상당한 거짓을 선전했다. 반파시스트의 시각으로 전쟁에 관한여 큰 틀에서 진실한 역사를 쓸 수는 있겠지만, 세세한 부분에선 신빙성이 떨어지는 편파적인 역사가 될 것이다. 아무튼 결국엔 '모종’의 역사가 기록될 터인데, 전쟁을 실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그 역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온갖 실리적 목적을 위해 거짓은 사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시와 마이크 (1945)
시가 음악이나 구어와 갖는 연관성은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시는 존재라도 하기 위해 종이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시인이란 사람에게 노래나 낭송을 기대한다는 건 건축가에게 천장에 회반죽 바르는 기술을 기대하는 것보다 곤란한 일이 되어버렸다. 서정적이거나 수사적인 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는 나라라면 어디서나 일반인들이 시에 거부감을 갖는 게 당연시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간극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 틈이 계속해서 벌어져가고만 있으니, 시는 주로 인쇄된 형태로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이라는 관념이 모호함과 '교묘함’을 더 자극하기 때문이다. 단번에 뜻이 통하는 시에 대해 어딘가 분명히 잘못된 거라고 반본능적으로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전략) 지금까지 나는 라디오를 보다 희망적인 매체로서 제시했고, 라디오의 기술적인 장점을 특히 시인의 입장에서 짚어보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처음엔 부질없이 들릴 텐데, 그건 라디오가 헛소리 이외의 것을 퍼뜨리는 데 이용된다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 세상 곳곳에 있는 확성기에서 그야말로 줄줄 흘러내리는 헛소리들을 듣고 있으며, 그래서 라디오를 딴 게 아니라 바로 그런 걸 들으라고 존재하는 것으로 단정 짓는다. 그래서인지 '라디오’라는 단어 자체가 고함지르는 독재자나, 아군 비행기 세 대가 귀환하지 못했음을 알리는 점잖고 묵직한 음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시는 줄무늬 바지 입은 뮤즈 여신들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매체의 가능성과 그것의 실제 쓰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방송이 그 모양인 건 마이크와 송신기라는 장치 자체가 본래부터 저속하거나 시시하거나 부정직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전파를 타는 전 세계의 모든 방송이,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며 그래서 일반인들이 너무 똑똑해지는 걸 막으려 하는 정부와 거대 독점기업의 통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비망록 (1945)
'원주민’을 옛날 식으로 경멸하는 태도는 영국에서 크게 약화됐으며, 백인종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유사 과학적 이론들은 폐기되었다. 지식인들 사이에선 피부색에 대한 반감이 역전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다시 말해 유색인종의 타고난 우월성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영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점점 일반화되어가고 있는 현상으로, 동양인이나 흑인의 민족주의 운동과 접촉해서라기보다는 마조히즘이나 성적인 좌절 탓인 경우가 더 흔한 듯하다. 피부색 문제에 대한 감정이 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속물근성과 모방심리는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영국의 지식인치고 백인종이 유색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해 분개하지 않을 이는 없겠지만, 그 반대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대수롭게 여기진 않을 것이다. 유색인종에 대한 민족주의적 애착에는 대개 그들의 성생활이 더 우월하다는 믿음이 섞여 있으며, 흑인의 성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겉으론 드러나지 않아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신화가 존재한다.
(전략) 지금의 세계에서는 지식인이라 할 만한 그 누구도 무관심해진다는 의미에서 정치를 멀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나는 지식인이라면 정치에(넓은 의미의 정치를 말한다) 개입할 수밖에 없으며 나름의 선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즉, 똑같이 나쁜 수단과 더불어 제시된다 하더라도, 어떤 대의가 다른 대의보다는 객관적으로 낫다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민족주의적 애증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그런 애증은 우리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우리들 대부분이 가진 기질의 일부인 것이다. 그런 기질을 없앤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은 가능하며 그런 투쟁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노력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감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는 문제이며, 그다음으로는 불가피한 편견의 여지를 두느냐의 문제다. 러시아를 증오하고 두려워한다면, 미국의 부와 세력을 부러워한다면, 유대인을 경멸한다면, 영국 지배계급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고 있다면, 그런 감정을 생각만으로는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인식할 수는 있으며, 그것 때문에 사고 과정이 오염되는 일은 방지할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며 어쩌면 정치적 행동을 위해 필요하기까지한 정서적 충동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병존할 수 있어야 한다. 단, 거듭 말하지만 거기엔 ‘도덕적’ 노력이 요구되는데, 우리 시대의 주요한 문제에 대하여 최소한 죽어 있지는 않은 동시대 영국 문학만 놓고 봐도 우리들 가운데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이는 너무나 적다는 걸 알 수 있다.
행락지 (1946)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 때문이다. 행락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중 상당수는 의식을 파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인간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면 인간으로서 잘 산다는 것이 단순히 일을 하지 않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등 아래서 녹음된 음악만 듣고 사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삶이 점점 더 기계화되는 현실에서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가, 옛것을 선호하는 감상적 취향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십분 정당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수많은 발명품들은 인간의 의식을 약화시키고, 호기심을 무디게 하며, 대체로 인간을 가축에 더 가까운 쪽으로 몰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속의 달” (1946)
"물속의 달"이 대단한 건 뜰이 있다는 점이다. 살롱에서 밖으로 이어진 좁다란 통로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꽤 큰 뜰이 나타나고, 거기 플라타너스들 아래 작은 녹색 테이블들과 철제 의자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뜰 한쪽 끝에는 아이들 그네와 미끄럼틀도 있다.
여름날 저녁이면 여기서 가족 파티가 열린다. 그럴 땐 누구라도 플라타너스 밑에 앉아, 미끄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이 신나서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맥주나 생사과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아기들이 타고 온 유모차는 문 가까이에 세워두면 된다.
"물속의 달"은 장점이 많지만, 내 생각에 제일 훌륭한 건 바로 이 뜰이다. 아빠만 밖에 나가고 엄마는 집에 남아 아기를 봐야 하는 대신 온 가족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아이들은 뜰에만 입장이 허용되지만, 펍에 슬며시 들어가서 부모가 마실 술을 가져오는 수도 있다. 그건 아마 불법이겠지만, 그런 법이야 어겨도 될 만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펍에 못 들어가게 하는(그래서 어느 정도 여성들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야말로, 마땅히 온가족이 모이는 장소가 되어야 할 펍을 술 마시는 곳으로만 만들어버리는 청교도적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영어 (1946)
(전략) 정치와 관련이 있는 많은 단어들도 비슷하게 남용되고 있다. '파시즘’이란 단어는 이제 '바람직하지 않은 무엇’이라는 뜻으로 쓰이지 않는 한 아무 의미도 없게 되어버렸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유’, ‘애국적인’, ‘현실적인’, ‘정의’ 같은 단어는 각각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다른 뜻을 여러 개씩 가지고 있는 경우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경우, 합의된 정의란 게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정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하면 사방팔방에서 저항을 받게 된다. 어떤 나라를 민주적이라고 하면 거의 예외 없이 그 나라를 칭찬한다는 느낌이 든다. 때문에 어떤 체제의 옹호자들이든 그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주장을 하며, 만일 그게 어느 하나의 뜻으로 굳어져버린다면 그 단어를 그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단어들은 의식적으로 부정직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달리 말해 사용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나름의 정의는 있지만, 듣는 사람이 그와는 다른 무엇가로 생각하더라도 묵인하는 것이다. ‘페탱 원수는 진정한 애국자였다’, ‘소련 언론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다’, '가톨릭 교회는 박해에 반대한다’와 같은 발언은 대부분 속일 작정으로 하는 말이다. 그밖에도 여러 뜻을 갖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속임수에 가깝게 쓰이는 단어로는 ‘계급’, ‘전체주의’, ‘과학’, ‘진보적인’, ‘반동적인’, ‘부르주아’, ‘평등’ 같은 것들이 있다.
(전략) 세심한 필자라면 쓰는 문장 하나하나마다 적어도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을 할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어떤 단어를 써서 그것을 표현할 것인가? 어떤 이미지나 숙어를 쓰면 뜻이 더 분명해지는가? 이 이미지는 효과를 낼 만큼 참신한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더 질문할 것이다. 문장을 좀더 짧게 쓸 수는 없는가? 꼴사나운 부분 중에 고칠 수 있는 데는 없는가? 하지만 그런 수고를 굳이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이미 만들어진 어구들이 마구 밀려들도록 놓아두기만 하면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관용구들이 대신 문장을 만들어줄 것이며(어느 정도는 대신 생각을 해주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필자의 의도를 필자 자신에게까지 어느 정도 숨기는 중책을 수행하기도 할 것이다. 정치와 언어의 타락 사이의 특별한 관계가 뚜렷해지는 건 바로 이 점에서다.
나는 왜 쓰는가 (1946)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보면 엉뚱하다 싶은 부분이 꽤 많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나 자신의 그러한 면모를 억누르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내가 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와,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정치 대 문학 :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1946)
흔히들 어떤 책이 명백히 그릇된 인생관을 표방한다면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적어도 주제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문학적 장점을 지닌 책은 어느 정도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이는 사실을 무시하는 말이다. 역사를 통틀어 지금과 같은 진보 대 반동의 투쟁은 언제나 있어왔으며, 어느 시대든 최고의 양서들은 항상 다양한 관점을(다른 것들에 비해 명백히 잘못된 관점들까지도) 반영해왔던 것이다. 어느 작가가 선전원 노릇을 하는 한, 우리가 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선은 그가 자신이 하는 말을 진정으로 믿을 것, 그리고 심하게 어리석은 말은 하지 않을 것 정도다. 오늘날에는 이를테면 가톨릭 신자나 공산주의자, 파시스트, 평화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또는 옛날 스타일의 자유주의자나 일반 보수주의자가 좋은 책을 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심령술사나 부크먼 추종자, KKK 단원이 좋은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관점은 정신건강 차원의 온전함, 그리고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재능일 것이며, 그것은 확신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프트는 정상적인 의미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비전은 확실히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골라내어 확대하고 비틀어서 볼 줄 아는 능력이기도 했다. 『걸리버 여행기』가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세계관이 온전함이라는 기준을 겨우 만족시키는 수준일지라도, 작가의 확신이 뒷받침해준다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충분히 낳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1947)
(전략) 사실 셰익스피어든 다른 어느 작가든 ‘훌륭한’ 작가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나 논거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를테면 워윅 디핑을 ‘형편없는’ 작가라 확실히 증명할 방법도 없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 생존이야말로 그 자체로 다수 의견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지표인 것이다. 톨스토이 식의 예술론은 완전히 무가치한 것이다. 자의적인 가정에서 출발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한 용어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톨스토이의 공격은 '응대’를 할 수 없는 무엇이다.
정말, 정말 좋았지 (1947)
대개 어느 시기에 대한 사람의 기억은 당시로부터 멀어질수록 약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기에, 지난 일들은 새로운 사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잊혀져야만 한다. 스무 살 때였더라면 지금으로선 가히 불가능하리만큼 정확하게 내 학창 시절의 역사를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기억이 더 날카로워지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전에는 다른 것들과 무차별적으로 뒤섞여 있던 것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리바이어던 (1948)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모든 작가의 본분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다만 지금 우리가 정치적 충심과 문학적 충심 사이에 그어 둔 선을 보다 선명하게 긋자는 것이다. 그리고 비위에 거슬리지만 해야 하는 어떤 일을 기꺼이 한다고 해서 그런 일에 따르기 마련인 신념을 무턱대로 받아들일 의무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작가가 예민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와 관련된 지저분한 일을 기피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그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글이 당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이단에 다다를지라도 그런 사고의 과정에 등을 돌려서는 안 되며, 자신의 비정통성이 남들에게 감지되더라도 너무 개의치 말아야 한다. 오늘날엔 작가가 반동적인 성향이 있다는 의심을 사지 않을 경우, 좋은 작가는 아니라는 증표가 될 수도 있다. 20년 전에는 공산주의에 동정적이라는 의심을 사지 않으면, 좋은 작가가 아니라는 증표였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