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기 1 : 무장애 디자인


레이캬비크로 가기 전에 짐을 조금 덜기 위해 출국(?) 전날 일요일 K의 거처로 향하던 버스 안이었다. 버스가 탑승객이 없는 정류장에 멈췄다가 출발하는가 싶었는데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버스를 쫓아 손을 흔들며 차를 세웠다. 뒤이어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이 버스에 올라탔고 비교적 한산했던 버스의 빈 자리를 찾아 착석했다. 몇 정거장이 지나 버스가 어떤 정류장에 멈췄고 시각장애인은 안내견과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말 그대로 심리스한 광경이었다.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탑승하여 원하던 정류장에 내리는 일련의 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본인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정의당에서 진행하는 스터디 모임에 시각장애인이 있다. 여태 딱 한 번 모임에 온 적이 있었다. 스터디 모임 장소까지는 어떻게 찾아왔는지 잘 모르겠으나 모임이 끝나고는 나와 다른 스터디원이 강남역 인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게 되었다. 그가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인도하는지 아냐고 물었다. 부끄럽게도 그런 경험은 한 번도 없고 어디선가 배웠을 수도 있으나 당시에는 기억이 나는 바가 없었다. 짧게 설명을 들은 다른 스터디원이 그를 인도하고 나는 옆에서 그들을 거들었다. 그가 지팡이를 들고 혼자 걸었더라면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일 밤 강남역 거리를 시각장애인이 다닌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어보였다. 턱은 곳곳에 있었고 골목길의 차는 보행자와 너무 근접하게 다니며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는 지나치게 짧고 정류장의 버스는 무자비하게 출발해버렸다. 버스를 한 대 놓치고 겨우 그를 태워보낼 수 있었다.

런던에서 인파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인 피카딜리 서커스의 도버 스트릿 마켓에 갔다. 4층부터 지하까지 매장이 있었는데 별 이유없이 일행들과 4층부터 내려가면서 구경하기로 합의를 봤다. 4층 매장 한 켠에는 간단하게 차와 식사를 내어주는 곳이 있었고 그 근처로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서니 장애인 시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왔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렇게나 사람이 북적거리는(느낌으로는 명동에 사람이 한창 많을 때랑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것 같았다.) 거리를 뚫고 장애인이 오는 것, 둘째로 아무래도 운행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던 엘리베이터를 둘러싼 나선형 계단을 4층이나 올라가는 것이 아무래도 불가능해보였고 그렇기에 어떤 법규를 지키기 위한 임시방편책으로 4층에나마 그런 시설을 만들어둔 것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한국에서는 새로 짓는 건물들조차 휠체어 경사로를 확보하는 것이 힘들어서 이런저런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건물 인프라가 오래된 런던에서 그 옛날에 지은 건물들은 오죽하겠냐는 생각이 들면서 무장애 디자인에의 길에 산적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을지, 기술과 사회적 인식이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지, 그 무거운 생각이 가뜩이나 무거웠던 어깨를 짓눌렀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나왔고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때 내 눈에 꼼데가르송 플레이를 진열해놓은 코너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티셔츠를 들어 이리저리 둘러보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들어왔다.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런던에서는 되는구나, 아마 어떻게든 되겠구나. 다시금 강남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고 나는 왠지 모르게 황급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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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부터 스포츠 중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최초의 기억은 유치원을 다니던 때에 보던 국내 프로야구다. 당시 맹타를 휘두르던 김성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데 사실 그 때는 야구라는 운동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브라운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후 나는 종목과 국경을 넘나들며 스포츠에 대한 관심사를 넓혀나갔다. 서장훈과 우지원의 연세대를 응원했던 농구대잔치, 장종훈에서 시작해 이승엽으로 팬심을 옯겨 보던 프로야구, 피파 97과 98년 월드컵의 콤보로 이어진 국대 축구에의 관심, 신진식과 김세진이 씹어먹던 배구리그, NBA Live 2003, MVP Baseball 2003, FM 2005, Madden NFL 2005로 시작된 해외의 최정상급 프로 스포츠에 대한 동경까지, 삶의 대부분을 스포츠 중계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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