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여행기 15 : 리젠트 타이페이 근처의 술집


몸이 좀 피곤하니 타이베이 101이고 나발이고 전혀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는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집 근처에서 가벼운 안주에 소주나 시켜놓고 홀짝홀짝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머리를 스친 생각이, 아무리 대만과 타이페이가 낯선 문화를 가진 동네지만 우리나라처럼 “안주”와 “술”을 시켜두고 먹는 그런 곳이 하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영어로는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가 힘들 것 같아 “술집”과 “타이페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구글링을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술집이나 찾고 있는 술꾼들이 별로 없는 탓이었을까, 전혀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8년인가 어느 이름 모를 다음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을 하나 발견했다. 현지인도 아닌 여행객이 두세 군데 술집 비슷한 곳을 방문하고 쓴 글이었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었으나 그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지고 다시 구글링을 시작했다. 아이폰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놀랍게도 우리의 숙소 근처인 리젠트 타이페이에 7년 전 다음 카페의 그들이 방문했던 것과 비슷한 음식점들이 몇 개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당연히 P는 나의 계획에 동의를 했다. 설령 막상 가봤는데 뭐가 없을지라도 일단 한 번 도전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중산역에 내렸다. 숙소에 잠깐 들러 단수이행 짐을 가볍게 풀고 가볍게 씻고 바로 길을 나섰다. 구글 맵으로 찾아보니 약 10분에서 15분 정도는 걸어야 했다.

호텔에서 나가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단수이로 떠날 때만 해도 공항으로 가는 교통편으로 택시를 선택했던 우리는 아무래도 그 돈을 내고 택시를 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공항 버스를 타기로 마음을 바꿨다. 예의 그 한국인 직원은 보이지 않아 적당히 프론트에 있던 아무 직원에게 콜택시 예약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밤거리로 나섰다.

사실 지도에서 말하는 동네로 가는 내내 조금 불안했다. 길이 어둡기도 했고 인적이 드문 동네들, 무엇보다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동네들을 지나치면서 과연 어렵게 찾은 정보가 오래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끝끝내 나는 여호수아의 의지를 가지고 동행 P와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동네를 찾아냈다. (지금이야 당연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리젠트 타이페이를 기준으로는 동북동 방향 정도였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주변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술집” 비슷한 음식점이 서너 군데 있었다. 어차피 간판으로 보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기에 가장 화장실이 깨끗해 보이는 곳을 골랐다.

가게 안은 2000년대 중후반 동네 술집 분위기였다. 이곳 저곳에서 맥주와 안주를 시켜놓고 시끄럽게 떠들고 한편에서는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바닥에 적당히 꽁초를 버려두는, 한때는 대단히 익숙했지만 지금의 한국이라면 낯설디 낯선 그 분위기 말이다. 주인 내외분(으로 추정되는 분)들을 비롯해 다른 종업원들도 영어를 못하고, 우리는 그들의 말을 모르고, 메뉴판에도 영어가 없는 바람에 고생을 하나 싶었지만 이내 어떤 우아하게 생긴 아주머니께서 들어와 나이대에 비해 굉장히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 주문에 애를 먹지 않았다. 추정컨대 젊은 날 언젠가 미군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지 않았을까 싶은 분이었다. 지우펀에서의 조개 맛을 잊지 못해 조개 요리와 그 집에서 가장 잘 팔린다는 새우 요리를 시키고 타이완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는 큰 병으로 한 네 병쯤 비운 것 같고 맛있는 요리도 얼추 알맹이는 건져먹으니 거의 11시가 넘어 있었다. 여행의 마무리로 더할 나위 없이 대만스러운 일상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호텔 앞에서 공항 버스를 타러 나가야 했다. 피곤했지만 최소한의 짐만 빼고 모조리 미리 싸놨다. 술기운 덕에 잠은 잘 왔다.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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