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여행기 14 : 타이페이 가면 꼭 봐야 할 단수이의 노을


그렇게 북서쪽 방향으로 바다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새 시야가 탁 트이면서 공돌이 돌대가리(=나)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P와 있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으로 와닿았을 수도 있지만 그 타국 땅에 나홀로 서 있었다 하더라도 자연스레 감탄이 나올 만한 광경이었다.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느낌을 초라한 아이폰 카메라로 담아보려 했다. 비록 이 사진만 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겐 당시의 벅찬 느낌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사진이다.

방파제 근처에는 올망졸망한 가게들이 여럿 있었다. 칵테일을 파는 곳도 있었지만 왠지 맥주가 땡긴 나와 P는 방파제에서 바다를 향해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맥주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중저음의 톤을 가진 사장이 차분한 영어로 우리에게 맥주를 권했다. 한국에서 얼마나 술을 먹고 다니는 사람들인지 잘 모를 수밖에 없는 그는 우리에게 사무엘 아담스니 기네스니 하는 식상한 맥주를 추천했고 우리는 대만에 왔으니 역시 로컬 맥주 아니겠냐며 타이완 비어를 시켰다. 구운 오징어도 하나 시켰다. 그리고 하염없이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켰다. 그것은 분명히 내가 P가 보낸 지난 수만 시간 중에 손에 꼽힐 만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진부한 표현의 연속이지만 그 때는 그렇게 진부하게 좋았다.

해가 거의 지기 전에 맥주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외로 해가 빨리 져버렸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단수이역으로 내려갈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걸어서 내려갈지 고민하다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단수이에서 유명하다는 카스테라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깜깜했지만 사람도 많고(여름철이라 그런지 이 나라 사람들은 밤에 많이들 나오는 느낌이었다.) 공원에서는 버스킹도 하고 온갖 해산물을 파는 횟집 분위기의 식당이며 기념품 잡상인들, 야시장의 가판들이 있어서 걸어가는 길이 심심하진 않았다. 대충 괜찮아 보이는 카스테라 집에서 거대한 카스테라도 하나 사먹고(맛은 평범하다.) 꼬치 파는 곳에서 튀김 꼬치도 하나씩 사먹고 편의점에서 마실 것도 마셔가면서 아까 먹은 맥주 + 오징어와 함께 저녁을 때웠다. 단수이역의 화장실을 들른 뒤 전철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 날의 여정은 그렇게 꽤 피곤했다.

진짜 마지막에 갈 수 있다면 가볼까 고민했던 타이베이 101을 들를 수는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 머리에는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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