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여행기 12 : 훠궈, 그리고 여행


사림역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을 먹어야만 하는 그런 때였다. 고궁박물관에서 버스를 타고 사림역으로 이동하는 중에 인스타그램과 각종 블로그를 통해 열심히 검색을 한 결과 역 근처에 먹을 만한 훠궈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행이 끝난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이 정보를 어느 블로그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튼 위치 설명이 부족해서 간판과 밖에서 보이는 메뉴를 보고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는 있었다. 가게는 작았지만 손님은 제법 있었다.

사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흥미로운, 즉 사림역에 왔다면 이 훠궈집은 꼭 먹어보고 가야겠다는 인상을 주는 집은 아니었다. 메뉴나 분위기나 가격 면에서(타이페이의 물가는 서울의 그것보다 저렴한 편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한글이 적힌 메뉴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쌀과 음료수는 “자기”라는 말이 메뉴에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셀프”라는 말을 오용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영향이겠거니 싶었다. 적당히 두 가지 메뉴를 골랐다. 기억이 맞다면 고추 돼지 뜨거운 냄비(hot pepper pork hot pot)와 토마토 쇠고기 뜨거운 남비(tomato beef hot pot)을 시켰다. 국물만 시키기에 조금 아쉬워서 조그마한 닭 튀김도 시켰다. 밥과 물은 셀프라고 했으니 적당한 양을 퍼와서 서빙된 훠궈와 함께 식사를 마쳤다. 담백하고 맛이 있었다. 전날 과음을 한 건 아니지만 한국식 해장에 매우 적합한 메뉴였다.

계산을 마치고 마음의 고향이 되어버린 리젠트 타이페이 호텔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점심을 해결했던 훠궈집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나와 P가 저 훠궈집을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아마 9할 이상이 ‘여행에 왔으니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그 중에 9할 이상이 ‘하지만 아무 거나 먹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으니 남들이 추천하는 것을 먹자’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검색을 했고 검색 결과가 가리키는 단 하나의 “맛집”인 사림역 근처의 그 작은 훠궈집에 가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작은 훠궈집은 가성비면에서 뛰어난 진짜 맛집이었을 수 있다. 조금 허기가 진 덕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맛있게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은 심증을 버릴 수 없었다. 수 년 전 누군가 우연히 가게 된 훠궈집에 대한 리뷰를 쓴 뒤로 모두가 같은 정보를 보고 이곳이 맛집이라며 방문해서는 역시나 맛있다는, 지극히도 플라시보적인 리뷰가 켜켜이 쌓인 결과는 아닌지 그렇게 의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한참 뒤에 한국일보에 실린 기고문을 보면서 사림역 근처의 훠궈집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낯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양이 대단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렇게 사소하고 평범한 부분까지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 낯섦의 순수한 가치를 애써 훼손하려는 행위는 아닐지 한 번쯤 생각해볼 대목이라고 느낀다. 기고문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해본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찾아간 식당은 그러나 문이 닫혀 있었다. 다들 배가 고프니 아무 데나 들어가고 싶은 눈치였다. 근처 다른 식당은 비싸고 맛없으므로 ‘절대 비추’라는 온라인의 충고가 선명히 떠올랐다. 나는 단호히 안 된다고 소리치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고 태양만이 사정없이 내리쬈다.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기어이 내가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전화기를 집어넣고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아무리 검색해도 어떤 블로그에도 나오지 않는 그곳의 닭튀김은 내 인생 최고의 맛이었음을 고백한다.

리젠트 타이페이에서 숨을 고르고 원기를 회복하면서 이번 타이페이 여행의 사실상 마지막 목적지라고 할 수 있는 단수이로의 여정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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