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여행기 3 : 날이 더울 때는 부담없이 택시를 타자


워낙 간단한 지도라 축척이 표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나름 유럽 배낭 여행 유경험자로서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임을 직감했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씨티은행까지 걷기로 했다. 이미 공항에서 이지카드를 구매해 버스를 타도 상관이 없었겠지만 이 때만 해도 주변 지리나 대중교통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때라 그냥 걷기로 했다. 그리고 걸었다. 난생 처음 와보는 나라의 한가한 오후 시간 풍경을 구경하면서. 가는 길에 좀 괜찮아 보이는 카페에 들러 밀크티를 하나씩 사먹기도 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P는 진열된 원두들이 모두 인도네시아 만델링이라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나쁘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은 아주 순조로운 것 같았다.

조금 땀을 흘리고 조금 지칠 만큼 걸어 지도에 표시된 건물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씨티은행이든 씨티은행 ATM이든 은행이든 뭐든 비슷하게 생긴 것이라고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여러 차례 고민하다가 지도에 표시된 건물이라고 추정되는 곳의 현관에 앉아 있던 경비원 같은 사람에게 다가가 지도의 그 곳을 가리켰다. 그가 뭐라고 했다.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대답인 것은 확실했다. 니하오와 씨에씨에밖에 알지 못하는 나보다는 중국말을 코딱지만큼 더 아는 P에 의하면 “없다” 같은 말을 했다는 것 같았다.

지도가 사실과 다른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의지할 곳은 구글 맵스밖에 없었다. 검색을 했다. 생각보다 타이페이 시내에는 씨티은행으로 검색되는 결과가 많지가 않았다.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한 결과 대충 저녁으로 먹기로 한 훠궈집 방향으로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내가 보기엔 이 때 택시를 탔어야 했다. 하지만 택시비가 얼만지도 모르겠고 높은 확률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될 택시 기사에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아직 이 나라의 분위기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나와 P 모두 애초에 택시를 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행을 하면서 택시를 이곳저곳 타본 결과, 타이페이의 택시는 확실히 서울 택시보다 저렴하다. 웬만한 장소는 구글 맵스에서 한자로 된 장소를 찍어 보여주면 무리없이 가고 내가 GPS로 가는 길을 보고 있는 것을 아는지 어쩌는진 몰라도 이상한 길로 돌아가거나 미터기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요금을 청구하는 경우도 없었다. 필라델피아 택시처럼 다 떨어져가는 차로 운행하는 경우도 없고 난폭운전을 하지도 않는다. 밤에는 미터기 요금과는 별개로 20달러를 더 받기는 하지만 그거 우리나라 돈으로 바꾸면 어차피 얼마 안 된다. 이지카드 결제까지 가능하니 날씨가 야외 활동에 적합하지 않을 때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면 택시를 잡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나의 적은 경험이 모든 타이페이 택시에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결국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는데 또 그러기엔 너무 많은 거리를 걷는 것 같아 중간에 훠궈를 포기하고 전혀 정보가 없는 동네에 있는 좀 더 가까운 씨티은행으로 향했다. 이미 한 번 지도에 당한 터라 가는 내내 또 없는 곳이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정말 다행히도 씨티은행이 나타났다. 확실히 다른 환전 경로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저렴한 수수료에 타이완 달러를 환전했다. 현금을 빵빵하게 채우고 은행을 나섰을 때는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나도 P도 그만큼 지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무 계획없이 외식을 하려고 할 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전혀 모르는 나라에서 갑자기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하니 정말 망설여지는 것이 많았다. 무엇을 파는지도 겨우 짐작하는 정도로 알겠는데 가격대는 얼마나 되는지, 들어가서 뭔가를 제대로 시킬 수는 있을지 생각해야 할 점이 적지 않았다. 여행 이틀차만 되었어도 망설임없이 택시를 탔을 텐데 그냥 근처에 대충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깔끔해보이고 바깥에 나와 있는 메뉴에 영어가 적혀 있는 음식점을 들어갔는데 Tasty라는 코스 경양식 프랜차이즈 음식점이었다. 젊고 영어를 잘하는 종업원이 서버로 붙어 주문부터 식사, 결제까지 문제없이 마쳤다. 음식은 아주 입에 안 맞는 것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편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를 하던 서양인(최소한 동양인은 아니다.) 아저씨가 식사를 하다 말고 꾸벅꾸벅 조는데도 아무도 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보면 원래 외국인들이 종종 다녀가는 지점인 것 같았다. 후식까지 싹싹 긁어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섰다. 오후 9시 무렵이었고 해는 완전히 져 있었다.

Related Posts

런던 여행기3: 프로 스포츠 팀의 팬이 되는 것에 대하여

아주 어릴 적부터 스포츠 중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최초의 기억은 유치원을 다니던 때에 보던 국내 프로야구다. 당시 맹타를 휘두르던 김성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데 사실 그 때는 야구라는 운동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브라운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후 나는 종목과 국경을 넘나들며 스포츠에 대한 관심사를 넓혀나갔다. 서장훈과 우지원의 연세대를 응원했던 농구대잔치, 장종훈에서 시작해 이승엽으로 팬심을 옯겨 보던 프로야구, 피파 97과 98년 월드컵의 콤보로 이어진 국대 축구에의 관심, 신진식과 김세진이 씹어먹던 배구리그, NBA Live 2003, MVP Baseball 2003, FM 2005, Madden NFL 2005로 시작된 해외의 최정상급 프로 스포츠에 대한 동경까지, 삶의 대부분을 스포츠 중계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 여행기2: 햄튼 코트 팰리스

이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의 발로지만, 런던이라는 도시의 주요 도심들을 며칠 동안 많은 시간 투자해 다니다보면 큰 맥락을 몇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으며 이미 한 번 그 무형의 유형 시스템이 자리잡은 이상 어디를 가든 어색함과 신선함 - 가히 내가 해외 여행의 최고 가치라고 꼽을 수 있는 그 감정들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이는 비단 런던이라는 도시의 문제만은 아니다. 뉴욕을 가든, 도쿄를 가든, 서울을 가든 어느 도시나 몇 날 며칠 지내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면 이런 느낌은 불가피하다. 그 변화무쌍하고 기이하기가 이를 데 없는 풍경을 가진 아이슬란드 역시 3박 4일 정도의 일정으로 여행을 하면 풍경이 금방 눈에 익는다. 아마도 스페이스엑스 따위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화성이나 달로 여행을 간다고 해도 아마 이 현상은 마찬가지일 것이다.